북의 최소 2.724개의 핵폭탄(수소폭탄,중성자탄코발트탄, EMP)

좌파들의 선군정책 강성북한 협박을 통해 본북한의 핵 능력

2006년 10월09일,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 일대를 진원지로 하는 북의 핵실험이 지축(地軸)을 진동케 하면서 세계를 요동치게하였다. 특히 당사자의 반응양태는 극명하게 갈린다. 절망 속에 빠져든 아메리카제국과 축제의 마당이 벌어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그 것이다. 이날은 대고구려 민족에게 있어 민족사적 사변이 틀림없다. 분명한 것은 북이 첨단 핵기술을 실물로 증명함으로서 원자폭탄은 물론 수소폭탄과 중성자탄 그리고 운반수단을 보유한 4대 핵강국이자 군사강국임을 확인한 것과 동시에 공식적인 핵보유국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난국에 직면한 미국은 전쟁을 선택하지 못한채 유치한 제재안 놀음이나 하고 있다. 전쟁을 선택하지 못하는 미국으로서의 한계다. 미국이 전쟁을 선택하기에는 북의 힘이 너무나 크다. 북의 힘!.. 그 힘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항상 결과는 과정이 있기 마련인 것처럼 의지를 품고 인내를 안은채 50년간 한결 같이 달려온 드라마틱한 과정이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핵기술과 핵능력을 완성하기 위하여 극비 속에 펼쳐진 북녘에서의 50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사진 / "2004년 9월 북의 핵실험 이후 한국 정보기관에서 내어놓은 동림산 일대 인공위성 사진"
<차 례>
1. 공개된 비밀핵실험.. 2004년 9월9일 량강도 김형직군에서 있었던 일
2. 파키스탄과 북의 관계.. 사실 북의 핵실험은 계속되어 왔다
3. 핵무기 기술에 대한 고찰.. 중성자탄은 핵기술의 절정이다
4. 북의 1단계 핵기술.. 원자폭탄.. 북은 다있다.
5. 지하 고효율 핵물질 제조공장.. 북은 엄청 많다(2724개)
6. 북의 3단계 핵기술 그리고 삼수발전소. 할 것 다했다.
7. 공개핵실험.. 2006년 10월9일, 또 다시 중성자탄.. 핵보유국이 되다
## 공개된 비밀핵실험.. 2004년 9월9일 량강도 김형직군에서 있었던 일 ##
2006년 10월09일! 이때 북의 핵실험은 처음이 아니다. 두번째 실험도 아니다. 세번째 실험도 역시 아니다. 북의 핵실험은 그동안 아무런 제약 없이 계속되어 왔지만 공개되지 않았고 발표되지 않았을 뿐이다. 2004년 9월8일 밤11시, 압록강 인근 중국 땅에서 고정활동을 하던 한 스파이는 본국으로 긴급정보 보고를 타전한다. 그 내용은 북한 땅에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보인다는 것이다. 2004년 9월12일, <연합뉴스>는 다음과 같은 서울발 긴급 특종기사를 내보냈다. 물론 전세계로 긴급 타전되었고 미국을 발칵뒤집어 놓은채 많은 뉴스와 해석을 쏟아내었다. [ 12일, 서울 외교가의 한 믿을만한 소식통은 북한 량강도 김형직군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과 관련, 직경 3.5~4㎞ 정도의 버섯구름 형태의 연기가 피어 오른 것이 관측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날 폭발은 북한의 9.9절인 지난 9일 오전 11시께 발생한 것으로 안다면서 아직 이번 폭발이 의도적 핵실험인지 사고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일단 그냥 폭발은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폭발이 발생한 곳은 대포동 미사일 기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소식통은 한국 정부도 이번 폭발을 추적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전세계의 이목을 순식간에 집중시키는 보도였다. 특히 버섯구름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핵실험을 연상하게 만드는 효과 만점의 특종보도였다. 과연 무슨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연합뉴스의 9일 오전11시는 NSC에 의해 정정되었다) 이때는 2004년 6월23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되었던 제3차 6자회담 이후, 첨예해진 북-미 대결 속에 북이 미국을 향해 폭발적으로 대미 비난 공세를 퍼부었던 시점임과 동시에 미국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이기도 하다. 이미 <뉴욕타임즈>는 2004년 9월3일, 北 핵실험 준비 우려 징후 포착 제하의 기사에서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우리가 핵실험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믿을 일련의 징후라면서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은 최근 4주동안 아주 높아졌고 북한의 새 움직임에는 정보기관들이 지난해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지목한 곳을 포함한 핵실험장소로 의심되는 몇개 지역 주변에서 포착된 물질의 이동도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2004년 10월은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는 시점으로서 워싱턴 정가에 번진 10월의 충격설과 맞물려 9월9일은 북이 정치, 군사적으로 가장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이러한 때에 <연합뉴스>가 한국의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하여 버섯구름 형태의 연기를 보았다고 보도했으니 세계가 발칵 뒤집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북은 즉각 핵실험 사실을 부인했다. 양강도 김형직군에서 대규모 폭발이 있었다는 관측이 제기된 지 하루만이다. 9월13일, 영국 <BBC> 인터넷판에 따르면 북한 백남순 외무상은 이날 량강도에서 있었던 폭발은 수력발전소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이뤄진 산악 폭파작업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중앙통신> 역시 우리 공화국(북)에서는 요즘 그 어떤 폭발사고도 일체 일어난 바 없다고 주장했다. <BBC>는 백남순 외무상은 북한이 폭발에 대해 더 일찍 설명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라멜 차관에게 외국 기자들이 모두 거짓말쟁이들이기 때문에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으며, 라멜 차관의 폭발 현장을 방문해 확인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검토 후 답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방송했다. 이후 북은 영국 라멜 차관을 비롯한 평양을 방문한 외교관들을 데리고 삼수발전소 현장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이사건은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깨끗이 마무리 되었다. 과연 아무일도 없었던 것일까? 백남순 외무상이 사실을 부인하며 적극 해명한 원인으로는 북이 핵실험 사실을 공개할 의도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의 의도와는 달리 한국정부가 공개하고 말았으니 미국과 함게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정부가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 문제는 2번의 폭발이 있었는데 버섯구름이 일어난 폭발장소뿐만 아니라 다른 한곳의 폭발도 삼수발전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데 있다. 폭발장소는 삼수발전소 일대가 아니라 량강도 김형직(후창)군 동림산 일대, 그리고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 일대였다. 9월13일, 북의 해명이후, 한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8일 량강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진파가 감지된데 이어 9일 김형직군 일대에서 폭발과 같은 이상징후를 감지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연합뉴스>는 또 이종석 사무차장을 비롯한 NSC 고위간부들은 13일 오후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서 지난 8일 특이한 형태의 연기구름이 포착된 지역에서 100㎞ 이상 떨어진 곳에서 지진파가 감지됐다고 밝혔다고 참석했던 여권 관계자가 전했다. 지금 인터넷으로 <구글어스>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북한 지역을 탐색해 보면 사각형으로 땜질한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량강도 김형직(후창)군 동림산 일대와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 일대의 지도가 다른 시점에 촬영된 지도로 덧씌워 놓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자기의 군사보호지역도 아닌 적의 지역을 아무도 알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왜 알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을까? <구글>은 미국회사이고, 미국정보부의 입장에서는 일반인들이 알아서는 안될 중요한 정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구글어스>에 미국이 덧씌우기한 두지역과 한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언급한 두지역은 조건이 맞다. 9월8일 23시경 동림산 일대의 규모 2.6의 폭발 지역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하고, 9월9일 01시경 지진파를 감지하지 못한 만탑산 일대의 폭발 지역은 NSC가 말한 김형직(후창)군에서 100㎞ 이상 떨어진 곳과 일치한다. 당시에 정보를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첫번째.. 한국정보기관에서 지적한 장소와 내어 놓은 사진은 양강도 삼수발전소 현장이 아니었다. 폭발 지역을 위성촬영하는데 실패했다며 내어 놓은 사진은 동림산 일대였고 동림산 일대에서 100㎞ 이상 떨어진 곳은 만탑산 일대이다. 두번째.. 직경 3.5~4㎞ 정도의 버섯구름 형태의 연기가 피어 오른 것이 해명되지 않는다. 비록 밤이었지만 이 버섯구름은 중국땅에서도 관측되었다고 한다. 이정도의 버섯구름이 형성되자면 발파작업으로는 형성될 수 없는 것일뿐만아니라 한국정부에서 감지한 지진파와 버섯구름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셋째.. 이미 징후가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정보부에서는 폭발이 있었던 날로부터 최소 6일 전에 핵실험 징후를 포착하였다. 9월3일 <뉴욕타임즈>의 보도 내용은 당연히 미 정보부에서 흘러나온 내용이다. 넷째.. 수력발전소 발파를 새벽에 한다는 것은 상식밖이다. 환하고 밝은 낮시간대를 제쳐두고 하필 어둡고 캄캄한 밤시간대를 택한 것은 순수히 수력발전소 발파를 위해서는 해명이 되지 않는다. 상당한 수준의 조명시설이 필요한 깊은 밤에 공사를 벌일 상황이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섯째.. 폭발의 진원지인 김형직군 일대에는 이런 대형 폭발을 일으켜야 할 대규모 댐 건설이나 발전시설이 없다. 폭발이 있었던 후창강은 약 300㎢의 유역 면적을 가진 소규모 강으로서 3~4m의 하천이 고작이다. 여섯째.. 왜 9월9일인가에 있다. 2004년 9월9일은 북한의 정권수립 56주년 기념일인 9.9절이다. 물론 이날은 휴일이다. 역사적인 사건이 될 핵실험을 아무 때나 하지 않고 의미있는 기념일에 맞추어 실시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보편적인 양상이다. 러시아 <코메르산트 블라스티>는 9월20일, 44면, 북한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폭발이 있었다는 점, 버섯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포착되었다 점에 있어서는 일단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산폭발이 아니라면 인위적인 폭발일 수 밖에 없는데 그곳은 화산지역이 아니다. 이러한 여러 정황으로 보아 2곳의 폭발은 핵실험 이외에는 절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이 핵실험을 예측한 상태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산꼴짜기에, 지진계에 감지될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9.9절에 맞추어, 그것도 심야에, 버섯구름이 보일정도로 폭발이 일어났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만 북과 미국, 러시아, 중국이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다. 북의 필요에 의해서 시험은 언제든지 결행되지만, 미국을 포함한 관련국은 핵실험을 실행한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며 숨기는 현상, 북이 핵실험을 했다고 말하지 않는 한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알수 없는 현상.. 이러한 현상은 26년간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현상을 필자는 공개된 비밀 핵실험이라 칭하고 싶다. 북이 때로는 시험용으로 때로는 대미 압박용으로 아무때나 핵실험을 해도 미국은 모르는 척하면서 벙어리 냉가슴만 앓을 뿐이다. 왜냐하면 공개되는 순간 한반도비핵화는 물건너가고 북은 핵보유국이 되며 핵확산이 뒤따라 올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9월12일 <연합뉴스> 특종보도는 미국 행정부 관료들로 하여금 얼마나 놀라게 했을지 짐작이 된다. 미국의 바램과는 달리 진실이 밝혀지려 했기 때문이다. 그때 얼마나 급했던지 버섯구름을 두고 미국은 그 곳에 산불이 났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의 특종보도 이후, 즉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ABC방송>에 출연해 이 폭발이 핵실험은 아니었다면서 아직 폭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핵관련 사건이었다는 징후는 없다면서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폭발이 핵실험일 가능성을 가리키는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리고 러시아는 알렉산더 제빈 러시아 과학아카데미(RAS) 극동연구소 코리안 리서치 센터장의 입을 빌어, 지난 9일의 폭발은 북한에는 실제로 핵무기가 없지만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북한이 핵을 이미 갖고 있다고 믿도록 하기 위한 속임수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과 일본은 침묵을 지켰다. 이와 같이 숨기고 싶은 미국의 속마음은 <ABC방송>, <CNN방송> 등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다. 방송에 출연할 수 밖에 없었던 미 행정부 관료들은 아마 노무현 정부를 매우 원망했을 것이다. <연합뉴스> 특종보도는 자신들로하여금 변명하는데 발품을 팔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숨겨야만하는 이 비밀을 노무현 정부는 왜 언론을 동원하여 터트렸을까? 그 이유는 당시 실험용 핵이 발각되어 국제적 압력에 처한 한국정부의 위기와 관련이 있다. 그 실험용 핵은 원자력잠수함 등을 위한 소형원자로(Smart형)의 원료(농축우라늄) 개발차원의 실험 수준이었는데, 실험장비와 미량의 추출물이 문제가 되었다. 연일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는 이를 문제삼고 나섰는고, 실험용 핵에 불과하다는 한국정부와 과학자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국제적 린치를 당하면서 IAEA의 사찰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었다. 한국정부는 지금껏 전혀 경험하지 못한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차에 북의 핵실험 정보를 입수했고, 이 정보는 위기를 극복하는 카드로 사용되었다. 여차하면 불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객기 앞에 미국은 핵 발각 사건을 없었던 일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약점을 잘알고 있었고 이 한방의 카드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렇다면 량강도 김형직(후창)군 동림산 일대와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 일대에서 북이 실험한 핵무기는 어떤 종류였을까? 그것은 중성자탄이다. 왜냐하면 방사능 피해없이 버섯구름이 보일정도로 노출된 실험을 할 수 있는 종류는 중성자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성자탄 실험은 방사능이 없어 상대적으로 안전하며, 제조비용이 저렴하고, 폭발력이 비교적 작아 좁은 국토에서 실험하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버섯구름을 만들어 낼수 있다. 특히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는 중성자탄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중성자탄은 수소폭탄보다 더 어려운 기술로서 핵기술의 완성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화학폭탄만으로 수소물질의 핵융합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화학폭탄 기술이 최고 수준이어야 가능한데 폭발속도가 초당 1킬로미터를 넘는 고성능 폭약이어야 한다. 중성자탄은 수소폭탄의 변종으로서 수소폭탄의 기폭제인 원자폭탄을 보통의 화학폭탄으로 대치하고 주위를 감싸고 있는 U238를 없앤 형태로 방사선의 방출을 극소화하고 단지 투과성이 아주 좋은 중성자만을 방출하게 하여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인명만 살상하도록 만들어진 폭탄이다. 2004년 9월8일 밤11시, 량강도 김형직(후창)군 동림산 일대의 핵실험은 비교적 지표면 가까운 곳에 핵무기를 설치한 중성자탄이다. 2004년 9월9일 새벽1시,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 일대의 핵실험 역시 중성자탄이었지만 이번에는 지표면 깊이 설치한 중성자탄이었다. 동림산 일대에는 수평갱도 상태로 준비되었으며 이는 버섯구름이 보여지게 된 이유임과 동시에 진도가 낮게 관측(진도2.6)된 이유이다. 버섯구름을 일부러 보여주는 것은 정치적인 효과를 위해서인데 미국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중국과 가까운 장소로 배려한 것이다. 버섯구름을 보여줄 수 있을만큼 노출된 실험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성자탄의 기폭제가 원자폭탄이 아니라 화학폭탄이기 때문에 방사능 낙진 오염이 없고, 발생하는 중성자는 특수한 장치에 의해 지하에서 소멸되기 때문이다. 국토가 좁은 북한으로서는 중성자탄이야 말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선의 핵무기였다. 더구나 동림산 일대는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이다. 만탑산 일대의 핵실험에서는 3~4의 진도가 관측되었을 것인데, 한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관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측하지 못했다면 진앙지를 알아내지 못했을 것인데 정확히 진앙지를 지적했으므로 관측하지 못했다는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만탑산 일대는 미국이 북의 핵실험장소로 주의깊게 지켜보던 곳이다. 반대로 동림산 일대는 미국이 큰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이다. 그 이유는 만탑산 일대에는 갱도를 깊이 파고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흔적을 많이 남겼던 것에 비해 동림산 일대는 지표면에서 그리 깊게 파지 않았으므로 미국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은 이 2장소의 핵실험을 공개하려는 의지는 없었다. 야간에 실시한 것과 백남순 부상이 전면 부인한 것이 북의 의지를 분명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미 핵보유를 선포한 북이 다음단계인 핵실험 카드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 카드를 뽑아 손에 든 것이다. 때문에 북은 미국에게 핵능력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이제 카드판에 내려 놓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뜻이다. 그러나 북이 공개할 것인지 침묵을 지킬지 알수 없었던 미국은 핵실험을 시행한 9월9일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조선중앙통신> 채널을 틀어 놓은채 두손을 모으고 할렐루야를 외치는 수 밖에 없었다. 며칠 후, 미국 부시의 책상 위에는 어설픈 정보요원이 흘려들은 내용을 적어 놓은 핵능력보고서가 아니라 성분분석표가 첨부된 현실을 의미하는 핵능력보고서가 올려졌다. 아마 그 보고서를 바라보며 하염없는 상념에 잠겼을 것이다. 2004년 9월11일 <조선중앙통신>은 섬멸적 타격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논평에서 부시 호전세력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전쟁도발의 길로 나온다면 미국은 일찍이 체험해 보지 못한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미국측이 공격준비를 끝내고 출발진지를 차지할 때까지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조선중앙통신>의 논평에서 핵심적인 단어는 바로 미국이 일찍이 체험해 보지 못한이라는 문장이다. 미국이 일찍이 체험해보지 못한 것 중에 하나는 중성자탄도 포함될 것이다. 2004년 9월8일 밤11시와 9월9일 새벽1시에 실시한 역사적인 북의 핵실험은 중성자탄이었으며 공개된 비밀핵실험이었다.
## 파키스탄과 북의 관계.. 사실 북의 핵실험은 계속되어 왔다 ##
2004년 9월8일 밤11시와 9월9일 새벽1시에 실시한 북의 핵실험이 중성자탄이었다면 어째서 북은 기초적인 플로토늄탄과 우라늄탄의 과정, 그리고 수소폭탄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중성자탄 실험을 한 것일까?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의문이 남는다. 그 의문의 답은 파키스탄에서 찾을 수 있다.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오래된 분쟁국가로서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상호간에 영토 및 종교적인 차원에서 분쟁이 계속되어왔다. 이 마찰을 카슈미르 분쟁이라고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지대 카슈미르는 1947년 8월 영국의 인도대륙 철수후 인도와 파키스탄이 독립되었으나, 그 지역에 대한 귀속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데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독립 당시 인도 정부가 지방호족의 영토를 편입하는 과정에서 카슈미르 지역의 힌두교도인 영주가 카슈미르의 인도 귀속을 결정하면서 회교도가 대부분인 주민들이 이에 반발하고 파키스탄이 이에 개입함으로써 영토분쟁화되었다. 당시, 파키스탄은 지역의 3분의 1, 인도는 3분의 2를 각각 점령하였으나, 지역인구중 회교도는 77%, 힌두교도는 22%였다. 1948년과 1965년 카슈미르에서 파키스탄과 인도 간 전쟁이 발발하였다. 교전이 빈발하였는데, 당시 1990년 4월에도 양측간 카슈미르 주둔 인도군의 병력은 약 20만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0년대에도 주장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아 카슈미르의 독립을 요구하는 무장부족집단과 인도군 혹은 힌두교도의 부족집단 간에 무력충돌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인도에게 핵을 이전하였고 핵보유를 용인하였다. 이것은 파키스탄에게 있어 군사적으로 치명적인 열세에 봉착하게 하였으며 파키스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핵무기 개발에 나라의 운명을 걸고 열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조건은 북과 딱맞아 떨어졌다.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은 파키스탄은 1970년대 초, 줄 피가르 알리 부토 총리가 풀을 먹더라도 핵폭탄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면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뒤로, 독일과 영국에서 우라늄 농축 장비와 기술을 들여오고 중국에서 핵폭탄 설계기술을 들여와 1980년대 중반에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였다고 한다. 한호석 소장은 또 북한과 파키스탄이 과학기술문화협정서에 조인한 때는 1982년 10월이었는데, 이때부터 북한은 파키스탄에 기술자를 보내 핵관련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 기술과 북한의 미사일 개발 기술이 서로 교환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미평화센터> 김명철 소장의 최근 견해는 다르다. 2003년 5월4일, 김명철 소장은 호주 <채널 나인> TV방송과 회견에서 미사일 생산에 사용된 핵기술은 파키스탄에서 실험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파키스탄이 북한 핵실험에 관련됐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물론, 그들은 부인해야만 한다고 응수했다. 2005년 3월2일, 김명철 소장은 국내 월간지 <말> 3월호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고도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핵실험에 성공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라며 북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기폭실험을 여러 번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1998년 파키스탄의 핵실험이 사실상 북한 핵실험의 대리시험이라고 주장했다. 김명철 소장은 파키스탄이 북한에 핵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북한은 파키스탄에 미사일 기술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틀린 것이라고 단언하고 진상은 북한이 파키스탄에 핵기술을 제공했던 것이고, 더욱이 북한은 파키스탄에 미사일 기술까지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2004년 2월27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이어 2004년 3월1일, <LA타임스>도 구체적으로 파키스탄 핵실험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LA타임스> 기사에 의하면.. [ 1998년 5월에 파키스탄은 차갈 언덕과 발루치스탄 사막 지하에서 여섯 발의 핵폭탄 실험을 했다. 5월30일에 한 마지막 실험은 차갈의 첫 번째 실험장에서 약 100km 떨어진 사막에서 했다. 마지막 실험용 지하시설은 수평갱이 아닌 수직갱이었다. 이는 경비가 덜 드는 방법이다. 이 마지막 실험에 쓰인 핵폭탄의 폭발력은 작았다. 파키스탄 당국자들은 소형화된 장치를 썼다고 말했다. 미국은 마지막 핵실험 장소 상공으로 정찰기를 보냈다. 이 첩보기는 상공에서 플루토늄을 검출했다. 동 핵실험이 있은 지 열흘 뒤인 1998년 6월10일 고려민항이 20명의 북한 과학자들과 실험기구 등을 싣고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이륙해 평양으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북한과 파키스탄이 공동 핵실험한 플루토늄탄은 북한에서 반입한 것이며, 히로시마 원폭 정도인 14KT(TNT 1만4000T)의 폭발력을 가진 것이었다고 한다. ] 2005년 3월16일, 미국의 군사안보 전문 사이트 <글로벌시큐러티>의 존 파이크 대표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1998년 5월28일에 플루토늄탄과 우라늄탄을 실험했다는 거의 확정적인 증거를 우리는 갖고 있다면서 파키스탄은 그해 두차례 핵실험을 했고 두번째 실험은 사실 북한의 첫 번째 핵실험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4가지를 지적했는데.. (1) 당시 미국 정보당국에서는 두 번째 실험에서 플루토늄 성분을 검출해낼 수 있었다는 정보수집 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1998년 당시에는 파키스탄이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플루토늄탄을 위한 장비와 기술도 없었다(2) 두 번째 실험 장소가 첫번째 장소에서 굉장히 떨어져 있었다. 첫 번째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을 두번째 실험을 한 사람들과 만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떨어진 곳에서 했다(3) 파키스탄에서는 첫번째 실험의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했지만 두번째 실험의 비디오테이프는 은폐하기 위해 우리에게 공개하지 않았다(4) 첫 번째 실험은 길게 수평으로 돼있는 터널에서 행해졌고 준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인 반면 두 번째 실험은 땅속으로 깊숙이 파들어간 곳에서 했으며 다른 것에 비해서 상당히 빨리 할 수 있는 실험이다 (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에는 매번 소위 방사능 뉴클리드라는 것이 발생한다. 지하에서 핵실험을 할 경우 방사능 뉴클리드는 폭발로 생긴 거대한 웅덩이에 고이지만, 지상에서 핵실험을 할 경우에는 폭발시 생성되는 버섯 모양의 구름을 타고 치솟아 올랐다가 바람을 타고 먼 지역까지 퍼져나간다. 만일 그럴 경우 이 방사능 뉴클리드는 핵실험을 감시하기 위해 전 세계에 설치되어 있는 80개의 기지를 모두 피해 갈 수는 없다. ) 누구의 주장이 옳은 주장일까? 당연히 김명철 소장의 주장이 맞다. 왜냐하면한호석 소장의 논설을 찬찬히 살펴보면 중대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북이 1980년 영변에 5MWe의 제2원자로 착공하였다고 사실을 밝히면서 그 시설은 정치협상용이라고 주장했다는 부분이다. 북이 핵군사력을 완비하지 않고서 미국과 정치협상을 벌일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1980년 당시 이미 북은 핵군사력을 완비하였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정치협상용이라는 뜻은 이미 핵군사력이 완비되었다는 뜻인데 어찌하여 18년이나 지난 1998년에 가서야 첫 핵실험을 하였으며, 또 늦게 시작한 파키스탄으로부터 핵기술을 얻어야만 했는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호석 소장은 왜 북이 파키스탄으로부터 핵기술을 이전받았다고 맞지않는 주장을 했을까? 그 이유는 한호석 소장이 북의 정치협상에 장애가 되지 않으려 고려한 것이다. 한호석 소장이 논필할 당시에는 북이 미국과의 거래를 위한 상호공존 협상 전략을 펼치던 때로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사실대로 논설하기 어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명철 소장은 왜 북의 정치협상에 장애가 되는 발언을 한 것일까? 그 이유는 지금은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의 전략이 타도제국주의로 전환되었고, 북-미 정치협상은 파탄 직전에 있다. 숨기는 것은 정치협상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정치협상이 파탄나면 숨길 이유가 없어진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김명철 소장은 미사일 생산에 사용된 핵기술은 파키스탄에서 실험됐다고 밝혔다. 미사일 생산에 사용된 핵기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화 및 정밀화된 핵폭탄을 의미한다. 핵기술에도 단계가 있다. 원자폭탄(플로토늄탄과 우라늄탄) 기술은 제1세대 기술, 제2세대 기술은 원자폭탄을 소형화하는 것과 수소폭탄 기술, 제3세대기술은 중성자탄 기술로 구분된다. 소형정밀화된 핵기술은 제2세대 기술이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글로벌시큐러티>의 존 파이크 대표는 북한이 파키스탄에서 1998년 5월28일에 플루토늄탄과 우라늄탄을 실험했다고 하면서 두번째(5월30일) 실험은 사실 북한의 첫 번째 핵실험이었다고 말했다. 말이 앞뒤가 안맞다. 파이크 대표의 말을 다시 정리하면 북이 파키스탄에서 5월28일 플루토늄탄과 우라늄탄을 실험했고, 5월30일 첫번째 핵실험을 했다는 것으로 된다. 그런데 5월28일 실험을 했는데 어찌하여 5얼30일이 첫번째 핵실험이 된다는 말인가. 파이크 대표의 주장은 맞다. 그러나 중요한 단어를 의도적으로 빠뜨렸다. 그 단어는수소폭탄이다. 빠뜨린 단어를 넣어보면 북이 파키스탄에서 5월28일 플루토늄탄과 우라늄탄을 실험했고, 5월30일 (수소폭탄의) 첫번째 핵실험을 했다로 된다. 수소폭탄이라는 단어를 넣어야만 말이 되는 것이다. 김명철 소장이 언급한 미사일 생산에 사용된 핵기술은 2세대 핵기술 중에 소형화 기술로서 1998년 5월28일 차갈 언덕에서 실험한 소형화 플루토늄탄과 소형화 우라늄탄을 말하는 것이며, 파이크 대표가 언급한 북의 첫번째 핵실험은 2세대 핵기술 중에 수소폭탄 기술로서 1998년 5월30일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실험한 첫번째 수소폭탄을 말하는 것이다. 또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핵폭탄의 매설방법으로 수직갱도(땅속으로 깊숙이 파들어간 형태)를 택한 이유는 실험결과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 북한 외교관 부인이 실험결과를 미국스파이에게 빼돌리려다 발각되어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므로 실험의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군사안보 전문 사이트 <글로벌시큐러티>가 북이 파키스탄에서 실행한 여러 실험 중 발루치스탄 사막에서의 실험을 특히 북과 결부시키면서 주목하는 이유는 이 실험이 바로 2세대 핵기술의 완성을 의미하는 수소폭탄 실험이기 때문이다. 2006년 10월31일부터 11월4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북한 핵프로그램의 실상을 직접 파악하고 돌아온 미국의 핵과학자 지그프리트 헤커 박사의 방북 보고서에 나타난 북의 핵기술을 잠깐 살펴보면.. [ 리홍섭 박사는 또 북한이 플루토늄 생산사이클의 전 과정을 마스터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북한은 당초 방사화학실험실을 상업적 핵연료사이클에 맞춰 설계했다. 즉 당초 수산염 플루토늄(oxalate)과 산화(oxide) 플루토늄을 만들었으나 2002년 11월 미국의 대북 중유 제공이 중단된 이후 원자로 재가동을 결정했고 방사화학실험실의 설계를 변경해 수산염플루토늄에서 산화플루토늄, 그리고 4불화(tetrafloride)플루토늄을 거쳐 금속플루토늄을 생산하도록 변경했고 이를 전기로 정련해 합금하고 주조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 모든 공정을 완료한 이후 2005년 2월에 우리는 핵무기를 생산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번 핵실험에 쓰인 금속플루토늄이 영변에서 생산됐는지 여부와 그 물성과 형상에 대해 질문했다. 리홍섭 소장은 2004년 1월 내가 만져봤던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시사했다. 그러나 형상(플루토늄의 조성분, 밀도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 북은 금속플로토늄을 보여주었다. 북은 플로토늄의 물성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금속플로노늄은 수소폭탄의 기폭제로도 사용되는데 플루토늄 피트(pits)라고 한다. 수소폭탄 실험을 실시하면 반드시 플로토늄 성분이 검출된다. 파키스탄은 1998년 지하 폭발실험 중 차갈 언덕의 5번의 실험은 북의 도움으로 성공하였으나, 북한의 발루치스탄 사막 지하 수소폭탄 실험에는 파키스탄 과학자들이 참여할 수 없었다. 북이 1980년 이전에 1세대 핵기술을 완비하였다면 18년이 지난 시점에 북의 핵기술은 당연히 2세대 기술 혹은 3세대 핵기술 단계로 접어들어야 온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2세대 핵기술이 집중적으로 개발된 파키스탄에서 있었던 일들은 핵개발 기술의 보편적인 진척도와 완전히 일치한다. 북-파키스탄 핵관계를 종료하는 시점에, 파키스탄 과학자를 배제한 채, 깊은 사막지대에서, 플로토늄 성분이 검출되고, 미국의 관심을 집중시켰다면 발루치스탄 사막에서의 핵실험은 단순한 핵폭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수소폭탄이었다. 북이 파키스탄으로부터 핵기술을 이전받았다는 설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진실로 꾸며지고 있을 뿐이다. 또 1998년 발루치스탄 사막의 실험은 북의 플로토늄탄이라는 주장 또한 숨기고 싶은 미국이 만들어낸 언론공작일 뿐이다. 진실은 1998년 5월28일은 처음하는 실험이 아니라 1998년 이전에도 파키스탄에서는 북이 참여한 여러 차례에 걸친 소형화를 포함한 각종 핵실험이 있었다는 것이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1998년 5월30일 파키스탄 두번째 장소 에서의 핵실험은 북의 소형 수소폭탄 실험이었다는 것이다. 1998년 5월28일, 파키스탄은 모두 다섯 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해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발표했다. 이날은 파키스탄이 공식적인 핵보유국이 되던 날이다. 그러나 총리는 5월30일 실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북은 1998년 파키스탄과의 비밀협정대로 20년간 신뢰하며 따라준 파키스탄에게 핵심기술을 전수하고 차갈 언덕에서 성능을 직접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역시 차갈 언덕에서 북에서 직접생산된 소형화된 우라늄탄과 소형화된 플로토늄탄을 함께 실험하였다. 그리고 2틀뒤 수소폭탄을 실험하고 북은 파키스탄을 떠난다. 파키스탄 입장에서 인도를 상대하기 위해 핵이 필요했다면 북의 입장에서는 미국을 상대하기 위해 철저한 보안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은 북-파키스탄의 절묘한 관계로서 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미국이 북과의 진실된 협상을 선택했었더라면 파키스탄은 핵보유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북은 파키스탄에 핵기술 뿐만 아니라 일부 미사일기술까지 이전해 주었다. 그 반대급부로 파키스탄은 핵실험 장소를 제공해주고, 필요한 장비(원심분리기 부품)를 수입해와 세탁방식으로 다시 북에게 제공하였으며, 또 생산된 농축우라늄을 북에 제공해주고 북의 무기를 수입해가는 것이다. 파키스탄과 북의 관계에서 놓칠수 없는 이슈는 농축우라늄이다. 파키스탄은 농축우라늄 핵개발을 북으로부터 추천받았는데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고농축우라늄 생산은 대형시설이 필요치 않아 기술만 확보된다면 비교적 손쉽게 핵을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전력(전기)비가 많이 든다. 파키스탄은 초기 핵개발 단계에서 산업용 농축우라늄 생산은 가능했으나 핵무기급 농축우라늄은 생산하지 못했다. 파키스탄은 1990년대에 가서야 핵무기급 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었는데 그 소유권은 북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생산된 우라늄탄은 북의 주도로 1998년 차갈 언덕에서 5발의 실험 중에 포함되어 성능이 입증된다. 북-파키스탄의 핵관계는 1998년 끝난다. 북-파키스탄의 관계는 북-미의 정치협상과 정확히 맥을 같이 한다. 1998년은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 제네바협의를 이행하지 않은채 시간만 끌고 있을 때인데, 한계에 이른 북의 인내는 결국 파키스탄을 핵보유국이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1998년은 백두산(대포동)1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하던 때이기도 하다. 1998년 이후, 북은 이라크와 이란, 리비아를 선택하여 새로운 핵관계 대상을 찾게된다. 미국의 패권을 지켜주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 정책은 파키스탄에 이어 더욱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2000년 부시가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되자 부시 행정부는 북과의 대결정책을 선택한다. 파키스탄의 일은 이미 엎질러진 물, 부시는 파키스탄의 뼈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핵확산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북과의 핵관계를 갖는 국가에 대해 무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전략을 구상하게된다. 그 명분으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우고 미국인의 동의를 얻기 위해 911테러 자작극을 펼친다. 한편 파키스탄을 받아들이고, 리비아를 설득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라크는 본보기로 미국의 침략을 받아야 했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9.11테러, 이라크전쟁, 파키스탄의 핵, 이란의 핵, 리비아의 변절, 이러한 단어들은 모두 북-미 핵대결의 부산물이다. 오늘날 지구 위에서 펼쳐지는 북의 역할과 지위를 잘 설명해 주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이제
## 핵무기 기술에 대한 고찰.. 중성자탄은 핵기술의 절정이다 ##
우리는 이쯤에서 핵폭탄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쌓아 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민족이 보유한 경이로운 첨단 핵기술을 우리 스스로가 모른다면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또 핵폭탄의 원리를 이해해야만 북핵대결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골치아프지만 살펴보자.
- 우라늄형 원자폭탄 -
천연우라늄 덩어리 속에는 U238, U235, U234, 등 여러가지 동위원소가 썩여있다. 이중 U238이 99.3%이고, U235는 0.72% 밖에 안된다. 이 천연우라늄 중에 있는 U235를 원심분리기로 농축하게 되면 농축우라늄이 만들어진다. 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방법으로는 원심분리법이 많이 쓰인다. 기체상태의 6불화우라늄을 원료로 하여 고속회전 중의 원심분리기에 넣으면 음속의 수배정도의 주속(周速)으로 회전동을 돌려 회전동내에 U235와 U238의 질량차에 의해 무거운 U238의 6불화우라늄은 회전동의 원주측에, 가벼운 U235의 6불화우라늄은 축측으로 분리된다. 이들의 기체인 6불화우라늄을 회전동내의 가스의 흐름을 흩뜨리지 않고 끄집어 내어는 기술도 필요하다. 분리계수는 원심분리기의 성능에 좌우되는 데 분리된 기체인 6불화우라늄을 능숙하게 끄집어 내는 척도이다. 원심분리법은 가스확산법에 비하여 분리계수가 크며 전력소비량도 적은 이점이 있다. 그러나 원심분리기는 제조와 운전에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 농축우라늄의 U235의 존재비가 20% 이상되는 것을 고농축우라늄(HEU, High Enriched Uranium)이라고 한다. U235의 비율이 20%~90%는 산업용으로 사용하고 U235의 비율이 90% 이상인 것은 군사용으로 사용한다. 발전용 원자로에는 U235가 3~4%의 저농축우라늄, 핵폭탄에는 U235가 93% 이상인 고농축우라늄이 쓰인다. 천연우라늄 속에 U235를 필요한만큼의 비율로 농축시키는 기술을 우라늄 농축기술이라고 하는데 고비율로 농축하는 기술이 확보되어야만 우라늄핵폭탄의 원천기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라늄 원자폭탄은 U235 비율 93% 이상의 고농축우라늄 주위를 고폭화약이 특별하고 정밀한 형태로 감싸져 발화장치에 의해 고폭화약이 폭발하면서 U235의 핵분열을 일으키는 원리다. 1945년 8월6일, 미군에 의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13kt의 우라늄형 원자폭탄이다. 메가톤(Mt)이니 킬로톤(kt)이니 하는 단위는 순수한 폭탄의 무게가 아니고 해당의 폭탄이 가지는 위력을 화약(TNT)으로 환산 한 것이다. 고농축우라늄은 원자력잠수함(핵잠수함)의 추진연료로도 사용되는데 U235가 90~95% 정도다. 이 고농축우라늄은 원자력잠수함이 25-30년간 연료의 교체없이 사용할 수 있다. 북한은 원자력잠수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플로토늄형 원자폭탄 -
플로토늄(원소기호:Pu)은 천연으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데 우라늄광석 속에 극미량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플로토늄은 발전용 원자로에서만 얻을 수 있다. 발전용 원자로에는 U235가 3~4%, U238이 96% 함유된 저농축우라늄이 사용되는데 저농축우라늄이 연소(핵분열)하는 과정에서 U238이 중성자를 흡수하여 플로토늄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발전용 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플루토늄을 따로 추출해낼 수 있다. 진보된 재처리 방법에 대해서는 앞서 필자가 언급한 북한의 리홍섭 박사가 미국의 헤커박사에게 설명한 방법과 같다. 플루토늄에는 239, 230, 241, 242 등 여러 가지 동위원소가 있는데 플루토늄 원자폭탄이 되려면 Pu239가 순도 93%이상 되어야 하고, 특히 Pu240의 비율이 6.5% 이내로 작아야 한다. 왜냐하면 Pu240은 스스로 핵분열을 일으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많이 포함되면 조기에 핵반응이 일어나 핵폭탄이 불발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순도 90%이상의 Pu239는 모든 원자로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U238은 고속의 중성자는 통과 시켜버려 물성의 변화가 없다. 반드시 저속의 중성자만 흡수하여 Pu239가 된다. 중수형원자로의 냉각수로 쓰이는 중수는 중성자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효과를 낸다. 경수형원자로의 경수는 중성자의 속도를 감속시키지 않아 적합하지 않다. U235를 이용한 핵폭탄의 경우 임계량(핵분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양)은 Pu239보다 많다. 따라서 플루토늄폭탄이 우라늄폭탄보다 소형화 할 수 있다. 같은 질량의 탄두라면 우라늄폭탄보다 플루토늄폭탄의 위력이 더 강하다. 그리고 핵폭탄의 위력은 탄두에 탑재된 핵물질의 질량과 관계가 있다. 1945년 8월 6일, 미군에 의해 일본 나카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22kt의 플로토늄형 원자폭탄이다. 플로토늄형 원자폭탄은 임계질량이 우라늄형 원자폭탄보다 25%정도로 작기 때문에 소형화에 용이하다. 플로토늄형 원자폭탄의 완성형인 금속플로노늄은 플루토늄 피트(pits)라고 하는데 수소폭탄의 기폭제로도 사용된다.
- 원자폭탄의 임계질량과 연쇄반응 -
일반적인 폭탄은 심지에 불을 붙이면 화약에 불이 붙어 화학반응으로 인해 폭발한다. 그러나 원자폭탄은 다르다. 화학반응이 아닌 물리반응이기 때문이다. 즉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는데는 필요한 열이나 압력등의 조건은 의미가 없다. 원자폭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은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U235와 Pu239이다. 핵폭발은 곧 핵분열을 의미하는데 이 두가지 물질이 핵분열을 일으키는 이유는 C-X(Cross-Section)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C-X라는 것은 단면적에 반응할 확률인데 즉 원자핵에 어떤 물질이 가서 반응할 확률이다. C-X 확률이 높은 U235와 Pu239는 일정량 이상 모이기만 하면 핵분열이 일어난다. 이 핵분열에 필요한 최소 질량을 임계질량(Critical Mass)이라고 한다. 반대로 임계질량 이하의 U235 혹은 Pu239는 핵분열을 일으키지 못한다. U235와 Pu239가 터져서 폭탄이 되기 위해서는 임계질량에 이르러야 한다. U235 혹은 Pu239는 임계질량에 이르게되었을 때, 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속에는 최초 중성자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최초 중성자를 첫중성자(Neutron Source)라고 한다. 첫중성자는 핵에 반응하여 핵분열을 일으키고 핵이 분열되면서 더 많은 다른 중성자들(대략 2-3개)이 튀어나와 다른 핵에 반응하고 또다른 중성자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와 연쇄적으로 반응한다. 이것을 두고 연쇄반응(Chain Reation)이라고 한다. 즉 중성자가 연쇄적으로 생겨나는 현상을 연쇄반응이라고 한다. 임계질량은 핵분열성물질 자체의 핵특성, 형상, 조직과 그주위의 물체의 형상, 밀도, 조성, 양자의 기하학적 위치관계, 등에 따라 다르다. 주위에 중성자를 감속 또는 반사시키는 물체가 없는 경우에 구체가 가장 적은 질량에서 임계에 도달한다. 임계질량은 U235의 경우 구형금속에서 약 20kg, Pu239의 경우 구형금속에서 약 5kg이다.
- 원자폭탄의 연쇄반응 유도기술 -
핵폭탄 탄두 속에는 핵물질(U235 혹은 Pu239)의 총량이 임계질량 이상으로 내장되어 있다. 그러나 임계질량 이하의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을 뿐 임계질량을 초과한 상태로 내장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연쇄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핵물질이 합쳐져 임계질량에 이르게 되면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핵물질을 합치는 역할은 화약(TNT)의 폭발압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하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포신형(gun type)이고 다른 하나는 내폭형(implosion type)이다. 포신형은 길쭉한 관 속에 U235(혹은 Pu239)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장착된다. 관의 가운데는 비어 있어 U235(혹은 Pu239)를 서로 떨어져 있게 함으로서 절대로 임계질량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화약(TNT)은 U235(혹은 Pu239) 바깥쪽에 장착된다. 관의 양끝에 있는 화약(TNT)이 터지면 분리되어 있던 U235(혹은 Pu239)가 높은 압력으로 가운데로 밀착되어 임계질량을 초과하게 된다. 임계질량을 초과하는 순간 임의의 U235(혹은 Pu239)원자에서 첫 중성자가 발생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핵분열의 연쇄반응, 즉 핵폭발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내폭형은 Pu239(혹은 U235)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가운데가 빈 공 형태로 만든다. 그리고 그 둘레에 화약(TNT)을 감싸놓은 형상이다. 이때 각 Pu239(혹은 U235) 조각은 미(未) 임계질량 상태다. 이 공 바깥에 있는 화약(TNT)이 터지면 각개의 Pu239(혹은 U235)가 높은 압력으로 가운데로 밀착되어 임계질량을 초과하게 된다. 임계질량을 초과하는 순간 임의의 Pu239(혹은 U235) 원자에서 첫 중성자가 발생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핵분열의 연쇄반응, 즉 핵폭발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포신형이든 내폭형이든 초기 폭발시 발생되는 고압과 고온에 견딜수 있는 금속외피가 있어야 한다. 그 재료로 적합한 것은 텅스텐이다. 텅스텐으로 만들어진 금속외피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형상을 유지하고 있어 임계질량이 분리되는 것을 막아 효과적인 폭발이 가능하게 한다. 금속외피가 견디는 시간은 마이크로초 단위이다. 만약 누군가가 10kg의 무기급 우라늄 2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살하고 싶다면 그 두개를 합치기만 하면된다. 원자폭탄 연쇄반응 유도장치의 핵심은 임계질량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포신형과 내폭형의 방법을 응용하여 얼마든지 더 좋은 연쇄반응 유도장치를 만들어 낼수 있다.
- 수소폭탄 -
수소폭탄은 핵분열반응을 이용하는 원자폭탄과 달리 반대로 핵융합반응을 이용한다. 핵융합(nuclear fusion)은 가벼운 원소 사이의 핵반응에 의해서 무거운 원소가 형성되는 반응이다. 수소 핵융합의 경우 [중수소(P-N) + 삼중수소(P-N-N)] --> 에너지(폭발) --> [헬륭(P-N-N-N) + 중성자(N)]와 같은 반응식으로 이루어진다. (P=양성자, N=중성자) 핵융합반응의 결과로 중성자와 헬륨(He, helium)원자핵, 감마선을 만들어 내게되는데, 이 셋다 엄청난 고에너지로서 이들중 감마선과 헬륨원자핵은 폭발과 동시에 주변으로 퍼져나가 핵탄두와 기타 폭탄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들을 1억도 까지 가열시킨다. 이 고온의 플라즈마에서 품어져나온 감마선에 의해 대기는 수천도까지 가열되어 버섯구름을 형성하며 고온으로 가열된 대기가 방출하는 강력한 섬광과 대기가 팽창할때 발생한 충격파와 폭풍으로 주변의 구조물을 파괴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것이다. 그 위력은 상상를 초월할 정도다. 수소폭탄의 원료물질은 중수소와 삼중수소와 기폭제인 플로토늄탄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수소는 보통의 물에서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풍부하고 값이 싸다. 30의 물은 약 1g의 중수소를 함유하고 있다. 북한의 영변 핵단지에는 중수형 원자로가 있는데 그 원자로의 물(중수)을 전기분해하면 중수소와 산소를 얻는다. 삼중수소는 원자로내에서 리튬에 중성자를 조사(照射)하는 방법과 입자가속기를 사용해서 조사하는 방법이 있다. 삼중수소는 수소폭탄의 원료로 사용할 경우 3~5g정도이면 1개를 제조할 수 있다. 삼중수소는 인공적으로만 생산이 가능한데, 리튬에 중성자를 쪼이면 삼중수소가 만들어진다. 중수형원자로 냉각수(중수)에서도 소량이기는 하나 지속적으로 삼중수소가 생성되고 방사광가속기, 양성자가속기, 사이클로트론가속기를 통해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 리튬(Li, lithium)은 바닷물에 1 cc 중 0.17mg이 있고, 지상에서는 광석에 금속리튬이 들어 있는데 칠레가 전세계의 53%를 차지하고 있으나 리튬 생산자체는 미국 2개 회사가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북 울진군 서면 왕피리 일대에 리튬광산이 있고 북한의 경우에도 다량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튬은 휴대폰베터리(리튬이온베터리)에 사용될 정도로 흔하다. 삼중수소는 수소의 동위원소 중 원자핵의 내부에 중성자가 2개 더 들어 있어 보통 수소의 3배의 무게를 가지는 방사성 물질로, 반감기가 12.3년이며 자연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만히 두어도 1년에 약 5%씩 저절로 붕괴하여 헬륨으로 변환된다 따라서 거의 영구적인 수명을 가지는 원자폭탄과 달리 수소폭탄은 제작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삼중수소가 함량 미달 상태가 되어 폭탄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주기적으로 수소 핵탄두의 연료 물질인 삼중수소를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수소폭탄은 핵융합에 필요한 초고온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플로토늄탄을 그 기폭제로 하고 특수강력용기가 짧은 시간 동안 폭심의 확장을 억제함으로서 삼중수소에 의한 핵융합반응이 대폭발에 이를 수 있도록 한다. 수소의 핵융합반응에서는 분열생성물이 생기는 핵분열과 달리 다량의 방사능이 발생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방사능 오염이 덜하여 깨끗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주위를 U238로 감싸기 때문에 핵융합에서 발생되는 고속의 중성자는 그 U238를 분열시켜 막대한 양의 방사선을 방출한다. (원래 U238은 분열성이 없어서 핵연료로는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속의 중성자를 맞으면 강제로 분열되어 막대한 방사능을 갖는 동위원소가 만들어진다. 이 우라늄은 우라늄광에서 채취하는 천연 우라늄의 99.3%로서 핵분열에 사용되지 않는다) 이 우라늄에서 나오는 막대한 양의 방사선은 인명을 바로 살상하기도 하지만 물질에 흡수되어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고 이들은 각각의 반감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길게는 몇 백년동안 방사선을 방출케 하여 사람을 살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이를 '더러운' 폭탄이라 한다.
- 중성자탄 -
핵기술은 핵심은 중성자의 제어(Neutron Control)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분열 및 핵융합은 중성자가 이동하면서 발생되는 에너지일 뿐아니라, 우라늄에 중성자를 쪼이면 플루토늄이 만들어지고, 리튬에 중성자를 쪼이면 삼중수소가 만들어지는 등, 중성자를 제어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중성자는 양성자와 함께 원자핵의 구성 물질이면서 전기를 띠지 않은 입자이다. 중성자탄은 수소폭탄의 변종이다. 중성자탄의 본체는 소형 핵융합폭탄, 즉 수소폭탄이므로 수소폭탄의 핵융합반응의 결과로 중성자와 헬륨원자핵, 감마선을 만들어지는 것은 수소폭탄과 똑같다. 중성자탄은 수소폭탄의 기폭제인 플로토늄탄을 고폭화약(high-explosive detonations TNT)으로 대치하고 주위를 감싸고 있는 U238를 없앤 형태로 '더러운' 방사선의 방출을 극소화하고 단지 투과성이 아주 좋은 중성자만을 방출하도록 만들어진 폭탄이다. 수소폭탄을 베릴륨(Be, beryllium)과 리튬(Li, lithium)으로 둘러싸게 되면 위에서 말한 고에너지 헬륨원자핵이 이들 베릴륨과 리튬의 원자핵에 충돌함으로서 고에너지 중성자를 발생시키는데, 크롬이나 니켈로 된 용기를 특수 설계하여 발생하는 중성자가 대폭발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용기를 빠져나가도록 설계된 것이다. 중성자는 전하가 없기 때문에 폭발시 발생한 플라즈마(전리 기체 ;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가스 상태)를 그대로 통과해서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즉 중성자선만의 강력한 살상 효과를 발휘하는데, 바로 방사선으로서의 살상효과이다. 기존의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이 가진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폭풍(50%), 열(35%), 그리고 방사능(15%) 효과 중에서 오로지 폭발과 동시에 방출되는 중성자의 방사능 효과만을 극대화한 국지 전용(지름 수 km이내) 핵무기여서 폭풍효과와 방사능 낙진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폭발과 함께 방출되는 다량의 강력한 중성자는 대부분의 방사선 차폐시설을 무력화할 수 있어 장갑차나 탱크, 군함, 건물 등은 파괴하지 않고 그 속에 있는 인명만 살상하게 된다. 기술적으로 수소폭탄의 제작이 가능하면 중성자탄을 만들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구축되는 셈이다. 순간적으로 다량의 중성자를 목표 지역에 뿌리는, 핵무기 기술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전술용 핵무기다.
- 코발트탄 ?
코발트탄 역시 수소폭탄의 변종이다. 코발트탄은 앞의 수소폭탄 주위를 감싸고 있는 우라늄 대신에 Co59를 사용한 것이다. 이 보통의 코발트는 핵융합의 중성자를 받아 Co60(코발트60이라 함)으로 변하여 주위에 흩어지게 된다. 이 코발트60은 반감기가 5.2년으로 베타붕괴를 하면서 강력한 감마선을 방출하는 무시무시한 방사성 동위원소이다. 이 코발트탄 10발 정도면 전 인류를 사멸시킬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되나 실제로는 제조되지 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EMP핵폭탄 -
EMP(electro-magnatic pulse)핵폭탄은 원자폭탄으로도 가능하고 수소폭탄으로도 가능하고 중성자탄으로도 가능하다. 그 중에서 수소폭탄이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EMP핵폭탄 원리는 강력한 정전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정전기는 전자기기에 치명적이다. EMP핵폭탄이 폭발하면 강력한 정전기의 발생으로 강력한 전기장이 형성되고 동시에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되어 주변지역의 거의 모든 전자기기들의 작동이 멈춰버리게 되고, 일부는 물리적 손상을 입힐수도 있다. 수소폭탄의 경우 핵반응이 일어나면 감마선 광자와 중성자, 그리고 헬륨원자핵이 형성된다. 원자폭탄의 경우 핵분열이 일어나면 헬륨원자핵 대신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원자핵들이 형성되는데 이들은 대부분 헬륨과는 달리 불안정해서 엄청난 잔류방사선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들입자외에 중성미자란 것도 방출된다. 이것의 에너지는 엄청나지만 물질과 거의 반응을 하지 않고 광속에 가까운속도로 그대로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버린다. 핵융합이든 핵분열이든 가장 강력한 입자는 감마선 광자인데 이들은 주변의 하전입자들 즉 원자핵과 전자와 에너지를 교환한다. 그런데 콤프턴산란이라는 과정에 의해서 질량이 작은 전자에게는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가하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질량이 상당히 큰 원자핵은 거의 에너지를 받지 못하게된다. 따라서 음전하를 띈 전자는 폭발과 동시에 빠르게 주변으로 튀어나가지만 양전하를 띈 원자핵은 훨씬 느리게 튀어나가고, 결국 핵폭발에 의해 형성된 수억도의 플라즈마는 안쪽은 플러스, 바깥쪽은 마이너스로 분극된다. 이때 형성된 강력한 전기장이 전자들을 다시 원자핵들에게로 돌려보내지만 이 과정이 거의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주변의 전기장은 엄청나게 강력하게 진동하게 된다. 전기장에 수직방향으로 자기장도 진동을 한다. 이것이 바로 EMP이다. 일반적인 전자기파의 경우 Sin곡선을 그리면서 진동하는 수면의 잔물결을 연상하면 되겠지만 이때 발생하는 전자기파는 높이 수킬로미터의 거대 해일과도 같다. 단 한번의 진동이지만 에너지가 엄청나고 무엇보다도 방향이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는 펄스파인 것이다. 이러한 EMP의 유용성때문에 각국이 폭약의 폭발에너지를 기초로한 EMP폭탄을 개발하고 있지만 언론에 발표되는것처럼 위력적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강력한 EMP의 발생요인은 앞서말한 것처럼 핵반응과 그에따른 감마선의 발생, 그로인한 콤프턴산란과 플라즈마의 분극 때문이다. 때문에 핵반응이 아니고서는 강력한 EMP를 발생시키기 어렵다.
- 화약의 고폭기술 -
핵기술의 절정은 뭐니뭐니해도 중성자탄이고 중성자탄의 요체는 고폭기술이다. 고폭기술은 화약의 폭발속도를 고속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폭발속도가 빠르면 순간적으로 더큰 폭발력과 초고온을 만들어낸다. 고폭기술이 적용된 화약을 고폭화약(high-explosive detonations TNT)이라 부르는데 수소의 핵융합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폭발성능, 즉 강력한 폭발력이 갖는 초고온 발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화약(TNT)이다. 고폭화약은 초당 1km의 순간속도를 낼 수 있어야한다. 성냥개비에 끝에 붙어있는 화약은 폭발속도가 매우느리다. 보통 치지직~!하고 타들어가는 것이 눈에 보일정도인데 만약 그 화약이 순간적으로 폭발하면 더큰화염과 고온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기술만 있으면 수소폭탄의 기폭제로 쓰이는 플로토늄이 없어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수소폭탄의 폭발인 핵융합이 일어나려면 엄청난 열이 필요하다. 이 열을 초고온이라 하는데 수소폭탄에서는 플로토늄 기폭제가 초고온을 내지만 중성자탄은 고폭화약이 초고온을 만들어 낸다. 즉 중성자탄=고폭화약+중수소+삼중수소라는 구성에서 고폭화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고폭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 중성자탄을 만들수 있고 고폭기술이 접목된 중성자탄이야말로 핵기술의 절정일 수 밖에 없다. 중성자탄 제조 기술이 있다면 농축우라늄이나 플로토늄을 제조하는 핵시설 따위는 필요없다. 중성자탄은 소형 전술핵무기로서 빠른 제조시간, 보관의 안전성, 작은 크기, 높은 살상력을 갖는 첨단 핵무기이다. 그러나 삼중수소의 생산이 지속되어야 하고 생산장비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 대상이라는 것이 문제다.
## 북의 1단계 핵기술.. 원자폭탄.. 북은 다있다.. ##
농축우라늄탄, 플로토늄탄, 소형원자탄, 수소폭탄, 중성자탄, 코발트탄, EMP핵폭탄, 핵공장, 핵잠수함.. 북은 다있다. 필자는 계속해서 설명해 나가고자 한다. (핵잠수함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원자폭탄 기술은 그리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으로 만들어진 우라늄탄은 임계질량만 되면 무조건 폭발하고, 플로토늄탄은 폭발방법에서 주의를 기울여야하는데 비전문가들에게나 어려운 일이지 전문 과학자들에게는 어려운 것도 아니다. 북은 1955년 원자 및 핵물리학 연구소를 설치하였고, 1956년 소련의 두브나 핵연구소 창설에 참여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핵과학자들을 연수시키기 시작하였는데 1956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의 두브나 핵연구소에 핵개발 연구인력 2백여명이 참여하여 1991년 까지 일부 인력이 이 연구소에 머물고 있었다. 또 1962년에 소련의 지원을 받아 영변에 민수용 아이알티(IRT)-2000형 연구용 원자로 건설하였고 소련의 재래식 기술인 퓨렉스 재처리 기술(Purex reprocessing technology)을 숙지하였다. 1959년 북소 원자력협정 체결되었고, 1961년 핵화학방위국 설치되었다. 북은 원자 및 핵물리학 연구소를 설치한지 25년이 지난 1980년 영변에 5MWe의 제2원자로 착공하였는데 미국은 1982년 4월에 인공위성으로 최초 탐지하였다. 원자폭탄을 충분히 만들고도 남는 시간이다. 자체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고, 최고의 인력을 충원하여, 소련의 지원을 받으면서, 북이 1955년 이래 25년동안 핵무기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통상적으로 정상적인 국가가 핵무기 보유의 목적을 가지고 연구개발을 시작한다면 7년이면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1980년은 의미있는 해가 된다. 즉 북이 1980년 미국 인공위성이 포착할 수 있는 5MWe 원자로를 영변에 버젓이 건설할 때에는 이미 미국에 대한 전쟁억지력을 충분히 확보하였다는 증명서와 같은 것이다. 북이 미국을 상대로 이미 충분한 억지력을 배비하였음을 증명한 것은 국제원자력기수(IAEA) 사찰단이었다. IAEA 사찰단은 영변의 핵개발 시설을 현장조사한 뒤에 그 시설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30년 묵은 낡은 시설이어서 그 시설을 가지고서는 가까운 장래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다고 언급했다. 30년 묵은 시설이 답이다. 그리고 1984년에는 영변에 50MWe 제3원자로 착공였는데 아직도 완공하지 않고 있다. 그 시설을 완공한다면 매년 확보할 수 있는 플로토늄량이 급격히 늘어날텐데 왜 북은 완공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핵무기 숫자는 이미 있을만큼 있고 그시설은 그저 미국과 정치적 협상용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미국이 영변의 핵시설에 대해 외과수술식 타격 운운하지만 그런 일은 하늘이 두쪽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핵시설을 파괴한다고 해서 북의 핵기술이나 핵무기, 비밀핵시설이 없어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보복전쟁을 감수해야하는 처지로 몰리기 때문이다. 북은 이미 1980년 이전에 핵보유국이었다. 다만 미국본토를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여 비밀리에 추진할 수 밖에 없었다. 또 미국과 기술적인 전쟁상태인데다 당시 남한에 배치된 미국의 엄청난량의 핵무기 때문에 전쟁을 불러올 핵기술에 대해 공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북이 파키스탄의 잇점을 이용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비밀 중에 비밀이었던 북의 핵기술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완성되었다. 또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더 보안 속에서 완성 되어 갔다. 무기급 고농축우라늄과 금속플로토늄을 폭발시키는 것은 우수한 폭발력을 가진 화약(TNT)과 텅스텐 합금기술만 있으면 된다. 텅스텐 합금기술은 총열과 포신을 만드는 기술이면 충분하고 화약은 포탄을 만드는 기술이면 충분하다. 이부분의 기술은 북의 전문분야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인도는 1974년에 핵폭발 실험을 단 한 차례 하고 나서 핵무장국이 되었고, 그 뒤로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핵폭발 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핵무기를 만들었다. 핵폭발 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면 핵폭발 실험을 하지 않는 이른바 임계전 핵실험을 통하여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자폭탄 기술은 우라늄 농축기술과 플로토늄 추출기술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로토늄 추출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최소한 저농축우라늄 제조 기술은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플로토늄은 저농축우라늄이 연소하고 남은 재에서 추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농축기술에서 고농축기술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은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문제는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우라늄 원심분리기 가동에는 상당한 전력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이문제는 중수형원자로에서 해결할 수 있다. 중수형원자로에서는 저농축우라늄 연료봉을 연소하면서 열에너지가 생겨나고 연소가 끝나면 우라늄재가 생겨난다. 우라늄재는 플로토늄으로 추출되고 생겨난 열에너지는 전기에너지로 전환되어 우라늄 원심분리기를 가동시킬 수 있다. 가동되는 우라늄 원심분리기에서는 다시 저농축우라늄과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 추출된 플로토늄은 재처리시설에서 여러단계의 과정을 거쳐 플로토늄 핵폭탄이 되고 생산된 고농축우라늄은 약간의 가공을 거쳐 우라늄 핵폭탄이나 핵잠수함 연료가 되며, 저농축우라늄은 다시 중수형원자로에 연료로 사용된다. 이와 같은 공생의 과정이 반복된다. 중수형원자로에서 생겨난 열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증기터빈발전기와 원자로의 증기탱크를 기술적으로 결합시키면 된다. 이렇게 결합하면 중수형 원자력발전소가 되는데 우라늄 원심분리기와 공생관계가 된다. 중수형 원자력발전소는 전력을 공급하고, 전력을 공급받은 우라늄 원심분리기는 연료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2기의 핵시설이 상호 밀착된 관계를 가지면서 가장 효율적으인 생산방식으로 가동되는 형태를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이라 칭하고자한다. 필자가 말하는 핵공장이란 바로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을 의미하는 것이다.이러한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은 북한의 비밀장소에 여러 개 가동되고 있음은 상식이다. 소규모 중수형 원자력발전소와 우라늄 원심분리기가 지하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돌아간다면 외부에서는 전혀 알아챌 수가 없다.
## 지하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 북은 엄청 많다(2724개).. ##
북은 파키스탄(80,90년대)이나 이란(최근 8년)에서 생산된 저농축우라늄을 회수해와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의 효율을 더욱 높였다. 즉 회수해온 저농축우라늄은 우라늄 원심분리기의 부담을 줄여 고농축우라늄에만 전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핵과학자와 핵기술자들이 북의 핵기술을 고급단계로 습득하였을 때, 즉 농축우라늄 기술이 고급단계에 이르러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때부터 생산된 고농축우라늄 역시 북은 획득하였다. 2006년 11월13일, 인도양에서 기관고장을 일으켜 인도경찰에 조사를 받았던 북한 화물선은 이란에서 평화적 목적으로 생산하는 저농축우라늄을 운송하기 위한 목적이다. 저농축우라늄은 북한의 빈배에 실려와 긴요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다. 2003년 5월4일, 이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반(反) 이스라엘 집회에서 향후 5년 안에 (핵연료를) 생산할 것이며 이를 (서방에) 50% 할인해 판매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아마 북한에 대한 공급의무 기한이 2011년인 것으로 추측된다. 1998년 8월, 미국은 평안북도 대관군 금창리 동굴단지를 주목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가 최초로 북한이 핵무기를 재개발하고 있는 의혹이 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 보도는 미 국방정부국(DIA)가 의도적으로 흘린 내용이었다. 또 1998년인데 파키스탄에서의 핵실험이 있었던 날로부터 2개월 정도 된다. 1998년 8월17일, <뉴욕 타임스> 정보자료에 관련하여 설명한 한 관리의 말에 따르면, 미국 정보기관들은 북한의 커다란 비밀 지하단지(huge secret underground complex)를 탐지했는데, 이 지하단지가 북한이 그동안 동결했던 핵무기 개발사업을 재개하려고 힘쓰고 있다는 가장 중요한 대상물이라고 믿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확인되지 않는 각종 내용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파장은 커져만 갔다. 금창리 인근지역에서 수차례 고폭실험 실시, 금창리 지하시설에서 냉각수용 저수시설, 원자로용 통풍구와 배수로 발견(길이 190m 6층 높이 규모확인),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행위는 파키스탄의 폭발을 목격한 미국 장치인들의 좌절과 객기가 서로 부딪히면서 생겨난 자중지란에 불과하다. 좌절에 빠져든 그룹들은 신속히 거래(북미제네바협의)를 이행하는 수 밖에 없다는 쪽이고 객기를 부리는 그룹은 한판 해보자는 것일 것이다. 금창리를 지목한 그룹은 객기를 부리는 그룹이 주도하는 것인데, 정치적 의미로 북의 모든 곳을 샅샅이 보겠다는 뜻처럼 보여지는데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부시행정부의 CVID와 같은 맥락이다. 객기를 부리는 그룹이 바로 부시 공화당 그룹이다. 이 그룹은 2년후 집권하게 된다.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부시 대통령의 특사 제임스 켈리가 북한이 처음에는 핵개발계획을 시인하지 않다가 나중에 증거(영수증)를 들이대자 시인했다고 발표한 이후 부시행정부는 북과의 핵협상에서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핵을 폐기하여야 한다고 요구한바 있다. 객기(=객쩍게 부리는 혈기)다. 금창리를 지목한 미국의 행동은 영변 핵시설이 정치협상용이고 진짜 핵시설은 따로 있다는 상식적인 판단을 그들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이러한 요구를 들어줄리 만무하다. 미국이 이렇게 나온다면 북-미 협상은 이루어질 수 없다. 언제라도 북의 핵생산 능력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북한의 군사시설과 군수공업시설은 대부분 지하에 건설되어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미국 언론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금창리 굴착공사는 1989년에 시작되었으며, 굴착공사의 규모는 40만평방m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축구장 20여개를 합해놓은 넓이에 비길 수 있다. 1998년 7월29일, <워싱턴 포스트>는 미 의회 산하 '미국에 대한 미사일 위협 조사위원회'(위원장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의 비밀보고서를 인용하여, 북한은 지하시설을 건설하는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직경 50피트, 깊이 200피트의 공간을 하루에 파낼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는 등 고도의 굴착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1998년 12월8일, 한국 국방부 북한정보본부는 북한의 주요 군사관련 지하시설은 8천2백36개소이며 총연장은 5백47km에 이르며, 최근에 주요 군수공장 1백80개를 지하공장으로 건설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1개 군마다 평균 40여개의 지하시설이 빽빽하게 들어있는 셈이다. 1개 군마다 평균 40여개의 지하시설.. 이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때문에 절대로 미국은 북한을 이길 수 없다. 남쪽에 네온싸인이 화려한 밤불을 밝힐 때 북녘은 전기를 아껴 핵억제력을 완성해 갔다. 남쪽이 지상에 높이높이 건물을 올릴 때 북녘은 지하로 깊이 깊이 들어갔다. 오로지 승리를 위하여! 이것은 정말로 한(悍)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하늘은 그들에게 승리를 선물할 것이다. 1998년 11월19일, 미국의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 찰스 카트먼이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금창리 지하시설이 핵활동을 의도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compelling evidence)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미국 행정부의 정치적 행보가 시작되었다. 평양 등을 오가며 무려 4번의 북-미 직접협상을 개최하였는데, 1999년 3월16일 일명 금창리협상의 타결을 선포했다. 북-미 간에 합의된 내용은 (1)북한은 미국에 대해 99년 5월 첫번째 대표단 방문을 초청하고 이 시설의 장래 용도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추가방문을 허용하며, (2)미국은 양국간 정치경제관계 개선을 위한 조처를 취하기로 하며, (3)미국은 식량 60만 톤(WFP) 및 감자증산계획을 지원한다(비공개) 등이었다. 결국 미국은 북에게 식량 60만 톤을 바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하는 조건으로 그 곳에 갈 수 있었다. 미국은 그곳을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금창리 동굴단지는 텅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엄청난 관람료를 지불한 것 치고는 허무한 관람이었다. 과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을까? 과연 미국은 그 엄청난 관람료를 지불하고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왔을까? 2004년 8월23일,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96년 가을 노동당 군수공업 담당 비서로부터 북한이 파키스탄과 우라늄 핵무기 합의를 타결지음으로써 러시아 등에서 플루토늄을 구입하지 않고 이른바 핵문제를 해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황씨가 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160㎞ 떨어진 금창리 동굴 단지를 거론하면서 그곳에 고농축 우라늄(HEU) 개발 계획이 감춰져 있다고 믿고 있다. 그 동굴에는 작은 원자로가 1개 들어 있었거나 원심분리 작업 혹은 화학적인 분리작업이나 재처리를 위한 작은 시설이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떻든 그 동굴이 플루토늄이나 핵무기 저장고였을 가능성 등 모종의 핵활동과 관련됐을 것으로 믿을 만한 이유는 있다고 강조했다. 황장엽이가 미국이 시키는대로 발언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로부터 들은 말을 전하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그의 발언으로 두가지를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이 파키스탄과 우라늄 핵무기 합의를 타결지음으로써 핵문제를 해결했다는 것 중에 핵문제의 의미이다. 1980년 이전에 이미 핵억제력을 갖춘 북의 핵문제는 오로지 비밀을 유지하면서 핵무기 수량을 신속히 증산하는 것뿐이었다. 필자가 설명한 북-파키스탄 핵커넥션을 확인해주는 발언이다. 지금은 북과 파키스탄의 커넥션이 끝났지만 북으로서는 상당한 전력(전기)이 소요되는 농축우라늄을 비용 없이 획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파키스탄을 선택한 것이다. 북은 핵기술을 제공하고 파키스탄은 핵시설과 관련된 제반비용을 충당한다. 그리고 그 시설에서 생산된 핵무기(고농축우라늄)와 핵연료(저농축우라늄)는 계약년한 동안 북이 획득하는 현지생산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둘째는 그 동굴에는 작은 원자로가 1개 들어 있었거나 원심분리 작업 혹은 화학적인 분리작업이나 재처리를 위한 작은 시설이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인데, 특히 주목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이기 때문이다. 작은 원자로는 중수형 원자로를 말하는 것이고, 원심분리 시설은 원심분리기를 말하는 것이며, 화학적분리 시설은 재처리시설을 말하는 것이다. 황장엽은 정확하게 지적했다. 거짓으로 구상한 발언이 아니라는 뜻이다. 북이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황장엽의 발언은 북-파키스탄의 핵커넥션과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 간의 관계를 은연 중에 설명하고 있으며 여러 장소 중에 하나로 금창리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하 금창리는 텅 비어 있을 리 없다. 찰스 카트먼 특사가 금창리 문제를 안고 평양으로 갔을 때 북은 거래를 계속할 생각이 있는가? 물었고, 카트만은 거래를 계속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북은 그렇다면 금창리 문제는 꺼내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카트만은 보더라도 보았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설득했고, 북은 그렇다면 돈을 내고 봐라라고 수용하면서 금창리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미국은 비밀전문요원을 보내 금창리를 관람할 수 있었다. 검은색 차양막이 쒸어진 차량을 타고 어딘지 모르게 달려간 곳은 금창리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요원이 볼수 있었던 것은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거대한 지하 공장이었다. 미국의 비밀전문요원들은 그들이 보고 들은대로 보고했을 것이다. 그 비밀보고서의 내용으로는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의 규모, 건설 예상년도, 핵물질 년간 생산수량, 등이 기술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를 접한 미국 수뇌들의 좌절은 컷을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발표내용은 그곳은 텅비어 있었다였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거래(제네바합의)는 깨어지지 않으면서 클린턴 행정부는 정치적 위기를 극복했고, 북한은 핵능력을 과시함과 동시에 일정한 보상을 얻은 셈이다. 전 클린턴 행정부 관료들은 아직도 협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왜? 그들은 파기스탄을 보았고 금창리의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동북아의 패권을 잃기는 싫고.. 그래서 요즘 미국은 북이 저절로 망하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꿈에 불과할 뿐 현실은 다르다. 그렇다 미국은 거래를 하든지 말든지 둘중 하나만이 있을 뿐이다. 미국은 북한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또 거래를 하지 않고 미국이 생존할 길이 없음을 깨우쳤다. 요즘 미국은 안달이 났다. 왜냐하면 북이 공식적인 핵실험을 실시했고, 뿐만 아니라 북이 거래를 계속할지 알 수 없고, 게다가 이란과의 관계는 깊어져만 가고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하기 나름이다라는 북의 발언은 미국에게는 생존을 위한 작은 불씨로 남았다. 미국은 여전히 북의 핵무기 보유량은 2~7기라고 주장한다. 2~7기는 미국이 정치협상용으로 주장하는 수량에 불과하다. 협상이 타결되었을 때 북이 해체하여야 할 수량이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실재 북이 생산, 배비한 수량은 얼마나 될까? 김명철 소장의 <김정일 한의 핵전략> 중에 김일성 주석 생전에 당시 김정일 비서는 조선이 없는 지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 단 한 알갱이의 핵먼지라도 떨구는 날엔 미국은 불바다가 되고 말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많다는 뜻이다. 2006년 10월11일,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민주주의 이념정치철학연구회 주최로 열린 수요강좌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쓰고 남을 만큼 만들어뒀다"며 "(이것은) 그들이(노동당 간부들이) 자주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많다는 뜻이다. 2003년 5월4일, 김명철 소장은 호주 <채널 나인> TV방송과 회견에서 북한이 최소 1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최대 300개일 수도 있다. 이들 핵탄두는 모두 미국 도시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5년 3월2일 김명철 박사는 국내 월간지 `말' 3월호와 인터뷰에서 현재 북한에 실전투입 가능한 핵무기가 적어도 300기 이상은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거기에다가 북한은 미 본토를 사정권 안에 넣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철 소장의 발언은 는 2003년도에는 100기라고 말했다가 2년 뒤인 2005년도에는 300여기의 핵무기가 있다고 했다. 이 것은 실제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군사력을 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숫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쉽게 말해 많다는 뜻이다. 아직은 북이 실제로 보유한 핵무기 숫자를 공개할 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과 같은 깡패국을 상대로 전쟁억지력을 충분히 확보하자면 핵무기는 많아야 한다. 또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운반수단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1980년은 핵무기와 운반수단이 미국의 침략을 저지할 수 있는 단계로 배비된 단계로서 미국과 북핵대결을 시작한 첫 시점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많다는 것은 도대체 얼아나 되는 것일까? 실재 북이 보유한 핵무기 숫자는 얼마나 될까? 2005년 3월2일 김명철 박사는 국내 월간지 `말' 3월호와 인터뷰에서 북한은 이미 1980년대 중반 300㎏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것은 해외에서 수입한 것인데 본인이 만난 북한 관계자의 말"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해외에서 수입한 300㎏의 플루토늄 이 발언 역시 김명철 소장의 의도적인 묘언(妙言)이다. 현재 북은 미국과 아직은 거래 중이고 공식적으로는 북이 우라늄 시설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명철 소장의 그 말을 바로잡으면 300㎏의 플루토늄이 아니라 300kg의 고농축우라늄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플로토늄을 수출할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그러나 당시 고농축우라늄을 획득할 수 있는 나라는 있었다. 바로 파키스탄이다. 북-파키스탄 비밀협정에서 파키스탄은 핵기술제공에 대한 대가로 농축우라늄을 북에게 공급하게되어 있었다. 저농축우라늄이 북으로 건너가면 고농축우라늄이 된다. 1980년대 중반에 300㎏의 고농축우라늄을 얻었다면 그 이후의 량까지 합하면 약 800㎏의 고농축우라늄을 순수히 파키스탄으로부터 획득한 것이 된다. 북한은 자체적으로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 3곳 이상에서 36년간(1970년~2006년) 생산한 플로토늄과 고농축우라늄 량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이계산치는 적분이 적용된 평균의 대략값이다. 플로토늄 : 영변의 5MWe 중수형 원자로에서 년 간 생산 가능한 플로토늄 량은 약 10kg 정도이다. 그러나 5MWe 중수형 원자로는 실험용에 불과하며 실재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에서 가동되는 중수형 원자로는 최소 50MWe급이다. 그렇다면 50MWe급 1기에서 년간 생산가능한 플로토늄 량은 약 100kg 정도이다. 250kWh의 전력으로 핵무기급 우라늄을 연 약 30g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MWe급 원자로는 년간 438,000MWh(50,000kWx365일x24시간)의 전력을 발전한다. 여기에 약 80%의 효율을 적용하면 약 350,000,MWh의 전력량이 발생한다. 여기에 자체 사용전력과 단지 내 사용전력, 그리고 휴지기간을 감안하여 50%를 적용하더라도 50MWe급 원자로는 남는 175,000MWh의 전력을 원심분리기에 사용할 수 있다. 충분하고도 남는 전력량이다. 고농축우라늄 : 파키스탄은 1990년께 2천여기의 원심분리기로 연 60kg 정도의 핵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한 바 있다.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 1기당 원심분리기의 수를 파키스탄과 동일하게 2,000여기로 잡으면 생산되는 무기급 고농축우라늄 량은 연간 60kg 정도이다.
* 파키스탄에서 획득한 고농축우라늄으로 제작된 우라늄탄 수량 = 800kg(획득량) / 20kg(임계량) = 40기(우라늄탄)
*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에서 생산하여 플로토늄으로 제조된 플로토늄탄 수량 = {100kg(생산량) x 3기(공장수) x 36년(가동년수)} / 5kg(임계량) = 2,160기(플로토늄탄)
* 고효율 핵물질제조 공장에서 생산하여 고농축우라늄으로 제조된 우라늄탄 수량 = {60kg(생산량) x 3기(공장수) x 36년(가동년수)} / 20kg(임계량) = 324기(우라늄탄)
따라서 북은 364기(40+324)의 우라늄탄과 2,160기의 플로토늄탄+수소폭탄을 보유하고 있으며 어림잡아 약 200기의 중성자탄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총계로는 약 2724기(오차범위:20%)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2005년 3월2일 김명철 박사는 국내 월간지 `말' 3월호와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 300기 이상 보유 주장에 대해 그는 흔히 핵탄두 하나를 만드는 데 5-7㎏의 플루토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1945년 당시의 낡은 기술을 사용했을 때나 맞는 말이고 (지금은) 1㎏만 있으면 1개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명철 소장의 발언 중에 플로토늄 1㎏만 있으면 1개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놀라운 주장이다. 보편적으로 플로토늄의 임계질량은 5㎏으로 알려져 있다. 임계질량을 극복하는 기술이 있다는 뜻일까? 만약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핵무기 숫자는 총량기준 3배로 늘어나게 된다.
## 북의 3단계 핵기술 그리고 삼수발전소.. 할 것 다했다.. #
북은 1단계 핵기술에 해당하는 원자폭탄(플로토늄탄과 우라늄탄) 개발을 1980년 완료하고, 2단계 핵기술에 해당하는 소형화와 수소폭탄 개발은 파키스탄에 실험하였다. 그리고 3단계 핵기술에 해당하는 고폭화약과 중성자탄 개발이 있다. (고폭화약 기술은 30년간 계속되어 옴) 2006년 10월11일,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민주주의 이념정치철학연구회 주최로 열린 수요강좌에서 핵사찰 문제가 나오던 당시(93년께) 전병호 노동당 군수공업담당 비서가 '지하 핵폭발장치를 다 준비해 놓고 제안서를 올렸는데 왜 승인이 안 나느냐'며 국제담당 비서를 맡고 있는 나에게 '국제관계 때문인가'라고 물어봤다고 말했다. 황장엽의 이러한 발언은 북한의 핵기술과 핵무기가 이미 1993년 이전에 완료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가 1993년 북-미 군사적 대결이 첨예해질 무렵 북이 정치적 이유로 핵실험을 준비했던 당시에 전해들은 얘기를 전하는 것이다. 황장엽은 북이 1980년 이전에 핵군사력이 완비되었는지를 알지는 못하는 것 같다.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은 한국국방부의 한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하여 북한이 폭발속도가 초당 9백미터를 넘는 고성능 폭약을 개발하였다고 그의 논설에서 설명하였다. 한호석 소장은 그 논설에서 북한이 기폭장치와 특수폭약을 개발하는 핵무기 개발의 둘째 단계 기술인 고폭실험에 성공한 때는 1983년이었다. 1989년에 북한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상온에서 핵융합 반응을 실현시키는 높은 기술수준에 이르렀다고 언급하였다. 1986년 3월에 미국은 첩보위성으로 영변 핵시설단지를 촬영한 결과 핵시설 부근 구룡강 모래밭에 생겨난 몇 개의 원통형 폭발구덩이들(cylindrical craters)을 발견했다. 미국의 핵전문가들은 그 폭발구덩이들이 핵무기 개발과정의 둘째 단계에서 진행하는 고폭실험(experimental high-explosive detonations)이 남긴 흔적이라고 파악했다. 1989년 6월 미국의 핵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영변지역에 고폭 실험장을 건설했다고 발표하였다. 북한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1년까지 영변의 구룡강 모래밭에서 고폭 실험을 약 70차례 실시하였다. 북한의 이러한 고폭 흔적들이 의미하는 것은 북은 1980년 이전에 농축우라늄과 플로토늄 핵기술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원자폭탄을 제조하고 배치까지 완료하여 새로이 수소폭탄과 중성자탄 기술에 뛰어들었다는 증명서와 같은 것이다. 북이 1983년 고폭실험에 성공했다면 중성자탄과 수소폭탄 개발 시작시점은 1983년이 된다. 중성자탄의 개발기반은 역시 고폭화약이다. 수소폭탄 제조는 중수소와 삼중수소 그리고 크롬(혹은 니켈) 처리된 용기(Case)만 있으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06년 10월11일, 북의 공식적인 핵실험 이후, 김명철 소장은 <KBS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 에 출연, 전화 인터뷰에서 북의 물리적 대응조치를 묻는 질문에 제일 첫 번 째 생각이 드는 것은 추가적인 핵실험이고 저번에 한 것은 경량 핵실험인데 이번에는 더 크고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소폭탄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소폭탄 얘기는 어떤 근거를 가지고 하는 말인가라고 묻자 김 소장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지금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없는 것은 없다, 다 있다고 대답했다. 또 이번 핵실험하겠다고 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 많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보여주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10월12일, 김명철 소장은 또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수소폭탄은 언제 만들었는가?라고 묻자 그것은 이미 오래됩니다라며 놀라운 답변을 내어 놓았다. 그의 발언은 1998년 5월30일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사막에서의 실험이 수소폭탄 실험이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김명철 박사 발언의 핵심은 북의 핵기술을 간단히 보면 안 된다. 못 믿겠다면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믿거나말거나가 아니라 북의 핵능력을 못 믿겠다면 추가핵실험을 통해서 다시 보여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김명철 박사 (조미평화센터소장, 재일 북한전문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운다. 그의 발언은 언제나 사실로 밝혀졌고, 그의 예언은 언제나 적중했다. 북한에 관하여서는 김명철 박사만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인물을 보지 못했다. 수소폭탄은 1998년 5월30일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사막에서의 실험에서 성공하였다 다만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중성자탄은 2004년 9월8일 동림산 일대와 그 다음 날인 9월9일 만탑산 일대 실험에서 성공하였다. 이것 역시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또 있다. 그것은 EMP핵폭탄에 관한 것이다. <서울경제>와 뉴욕 <한국일보>가 2006년 9월12일(현지시간) 공동 입수한 미 연방상원 법사위의 국토안보에 대한 테러리즘과 EMP 위협 청문회(2005년 3월) 속기록에 따르면 당시 중앙정보부(CIA) EMP 무기 전문요원이었던 피터 빈센트 프라이 박사는 청문회에서 EMP위원회가 지난 2004년 EMP 전문가인 러시아 군부의 고위급 간부들을 만났다며 그들은 슈퍼 EMP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이 북한으로 이전됐고 북한은 가까운 장래에 이러한 무기들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줬다고 밝혔다. 프라이 박사는 또 러시아 고위간부들은 북한이 슈퍼 EMP로 무장해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미국이 북한을 선제 공격해 슈퍼 EMP 무기 개발을 저지하더라도 러시아 정부가 이를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청문회에 참석한 EMP위원회 위원인 로렐 우드 박사도 우리가 북한 대포동 2호의 존재를 우려해야 하지만 더욱 염려스런 상황은 북한이 외국에서 상당한 도움을 받아 가장 진보적인 EMP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 연방하원 군사위원회의 로스코 바트렛 위원은 하원에서 EMP위원회의 비밀 보고서와 브리핑 등을 언급하며 북한이 러시아중국파키스탄 과학자들의 도움으로 EMP 핵무기를 이미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EMP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62년의 일이었다. 당시 미국은 태평양의 존스턴섬의 상공에서 1.4 메가톤의 수소폭탄을 터뜨리는 실험을 했는데, 1,300 km나 떨어진 하와이의 일부 지역에서 가로등이 나가고 전화가 불통되었으며 도난경보기들이 일제히 소리를 울리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인근 상공에 있던 7개의 인공위성들이 작동불능 상태에 빠진 것도 알게 되었다. 수년전 이란이 샤하브(Shahab)-3 미사일이 실험발사 중 공중에서 폭발했는데, 이것이 실패한 미사일 실험이 아니라 EMP 사용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공중에서 폭발시킨 것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의 관료들과 의원들이 북이 EMP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떠벌리며, 다른나라의 도움을 받았다느니 뭐니 하면서 본질을 흐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걱정이 깊다는 것만은 우리가 알수 있다. EMP핵폭탄은 곧 수소폭탄을 고공에서 터트리면 그 것이 EMP핵폭탄이다. 수소폭탄을 가진 북은 당연히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북이 보유한 핵(원자력)잠수함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백두산 아래 삼수 발전소에서 있었던 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의 삼수발전소는 2004년 9월 량강도 '폭발설' 당시 북측이 발파현장으로 해명한 곳으로 량강도 삼수군 지역을 흐르는 허천강과 운총강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한다는 계획 아래 2004년 5월7일 착공하여 2006년 6월15일 완공됐다. 삼수발전소 건설공사는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시공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독특한 방법이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정체불명의 물질로 산 하나를 통째로 날리는 공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파공법 덕에 삼수발전소는 놀라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건설되었다. 2006년 6월17일, <조선중앙통신>은 "10년이 걸려야 한다던 대규모 언제공사를 2년 남짓한 기간에 끝내는 기적을 창조했다"고 보도한바 있다. 삼수발전소 공사에는 618건설돌격대원들이라 칭하는 군인들이 건설했다. 필자가 삼수발전소를 주목하는 이유는 북한은 이른바 100만산(100만t 규모를 말함) 발파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식의 보도를 종종 내보냈었는데, 발전용 토목공사를 위해 사용하는 다이너마이트로는 이와 같은 폭발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이다. 2005년 1월4일, <조선중앙방송>은 삼수발전소 건설장에서 30만산 발파가 진행됨으로써 당창건 60돌과 조국광복 60돌이 되는 올해에 건설을 빠른 속도로 다그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렸다면서 이날 발파 신호가 울리자 폭음과 함께 모두 30만산이 되는 천연암반을 들었다 놓는 장쾌한 광경이 펼쳐졌다고 보도했다. 2005년 3월6일, <조선중앙방송>은 량강도 삼수발전소 건설현장에서 30만㎥ 대(大)발파작업이 진행됐다고 보도하면서 이번 발파작업이 올들어 3번째 진행된 것이라며 발파는 산봉우리를 통째로 날려보내는 그리고 언제(둑)의 안전성을 최대한 담보해야 하는 대단히 힘든 발파라고 소개했다. 북의 이러한 대규모 발파는 2004년에도 100만산 규모를 포함하여 여러 차례 있었다. 뿐만아니라 2005년 후반기에도 북이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차례 지진계에 감지되었다. 2004년 9월14일, <연합뉴스>는 북한 양강도 삼수 지역에서 지난 8월21일 리히터 지진계 규모 2.0의 지진파가 관측된 사실이 있다고 한국지질자원연구소 지진관측센터가 14일 밝혔다고 보도했다. 2006년 08월27일, <세계일보>는 주말인 25일 오후 북한 지역에서 진도 2.0에 까까운 인공지진파가 탐지되었다고 보도했다. 도대체 삼수발전소 건설현장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인하대 심명필(토목공학과) 교수는 댐 건설을 위해 이번처럼 산 하나를 통째로 파괴할 정도의 발파 작업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로 변경공사라 해도 산을 없앨 필요는 없으며 이런 규모의 공법은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다는 지적이다. 대림산업 기술연구소 구석근 소장도 댐 건설을 위해서는 튼튼한 지반이 필수적인데 그런 곳에서 대규모 폭파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발파 전문가인 지질자원연구소 유창하 연구원은 중국에서는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과거 몇 차례에 걸쳐 이런 형태의 폭파 작업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산을 날려버리는 수력발전소 건설.. 북은 왜 그렇게 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 답은 100만톤 규모의 산을 들었다 놓을 수 있는 화약은 고폭화약(high-explosive detonations TNT) 밖에 없다는데 있다. 일반 다이너마이트로는 절대로 100만산 아니 30만산도 폭파시킬 수 없다. 북은 2004년 5월7일 삼수발전소를 착공하여 연속된 고폭화약 실험을 미국에게 보여줌으로서 중성자탄을 갖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려한 것이다. 그러던 중에 2004년 9월8일 11시와 9월9일 01시에 있었던 공개된 비밀핵실험을 통해 실물로서 보여준 것이다. 북의 이러한 고폭화약 기술은 삼수발전소의 건설계획과 맞물려 2006년 6월15일 완공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고폭화약 기술은 미국이 거래를 성사시킬 의지가 없는 것이 최종적으로 확인된 때, 비로서 공개적인 핵실험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2006년 10월9일 북이 공개적인 핵실험 실시 이후, 세계 유수의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중성자탄을 언급한 이유는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척보면 안다. 미국의 실패설 유포행위와는 달리 과학자적 양심에서 중성자탄이기 때문에 중성자탄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 공개핵실험.. 2006년 10월9일, 또다시 중성자탄.. 핵보유국이 되다 ##
2006년 10월3일, 북한 외무성은 성명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연구부문에서는 앞으로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시험을 하게 된다고 천명하였다. 외무성은 이날 오후 6시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조선중앙TV> 등 북한의 전 언론을 통해 일제히 성명을 발표했다. 외무성은 미국의 반공화국 고립압살 책동이 극한점을 넘어서 최악의 상황을 몰아오고 있는 제반정세 하에서 우리는 더 이상 사태 발전을 수수방관할 수 없게 되었다면서 자위적 전쟁억제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조치를 취하게 되는 것과 관련해 엄숙히 천명한다면서 핵실험 예고를 분명하게 했다. 2006년 10월09일 10시35분, 지진계가 떨기 시작했다. 기록지에는 진도 3.9의 지진파가 관측됐다. 북이 공식적인 핵실험을 실시한 것이다. 핵보유선언, 미사일시험발사에 이어 북의 핵실험은 예고된 대로 실시된 셈이다. 전환점을 터닝하는 순간이며 워싱턴이 잿빛 속에 파묻히는 시작점이다. 10월9일 11시30분 한국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오전 핵실험을 했다는 첩보가 있었으며 현재 탐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의 핵실험 소식은 이번에도 한국정부에서 최초로 밝혔다. 10월9일 11시40분, 북한은 발사 후 1시간만에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지하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으며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라며 사실관계를 밝혔다. 공개적인 실험은 바로 이런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어 우리 과학연구부문에서는 2006년 10월9일 지하 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며 과학적 타산과 면밀한 계산에 의해 진행된 이번 핵시험은 방사능 유출과 같은 위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북이 발표한 방사능 유출과 같은 위험이 전혀 없었다는 발표의 의미는 중성자탄이었다는 말과 같다. 방사능 유출을 검측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성자탄은 방사능이 원래 없다. 없기 때문에 북은 방사능 유출을 검측 하지도 않은 것이다. 이로서 우리민족은 꿈에서도 생각지 못 했던 핵보유민족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기쁨에 겨워 믿어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슬픔에 겨워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2004년 9월의 비밀실험과는 달리 이번에는 공개적인 핵실험이다. 이 공개적인 핵실험은 캄캄한 밤이 아니라 충분히 밝은 10시35분에 실행되었고 향후 북-미 대결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 될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한국언론에 의해 북한의 핵실험 소식이 전 세계로 긴급 타전되고 있던 때에 미 <CNN방송>은 미국 정부 관리들이 북한의 핵실험 사실을 아직 확인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지진조사국도 지난 48시간 동안 한반도에서 지진파 탐지가 없었다고 밝힌 것으로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는 미국의 혼란을 증명하는 현상이다. 지난 7월4일에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공개적인 핵실험 사실을 보고받은 미 행정부의 대응은 충격(shock) 상태를 넘어 폐념(閉念; shut-down) 상태에 빠져든 모습이다. 이후 미 행정부는 일주일 동안 변변한 대응은 고사하고 미미한 반응 조차 없었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이날 저녁 북한의 핵실험 주장을 연합뉴스를 인용, 긴급뉴스로 보도했고 <CNN>, <폭스뉴스> 등 방송들은 정규 방송을 중단한 채 속보로 미 관계 당국의 움직임과 한국, 일본 등의 반응을 반복해서 방송했다. 핵실험 후 러시아 이바노프 부총리는 북한의 핵실험은 핵비확산체제에 대한 엄청난 충격"이라면서 북한은 사실상 9번째 핵 강국이 됐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최초로 북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하루가 지난 다음날, <AP통신>은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 전문가들이 초기 평가 결과, 펑하고 터지기보다는 실패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폭스뉴스>도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 북한의 핵실험 규모가 아주 작았다"며 북한이 실험을 통해 의도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도 미 정부의 핵 과학자들은 핵실험 도중 플루토늄의 일부만 폭발한 게 위력이 떨어진 가장 유력한 이유로 보고 있다며 미숙 폭발의 원인으로 핵장치 디자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을 꼽고 있다고 전했다. 북에 대한 미국의 이러한 거짓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주 상습적이다. 이것은 마치 만인이 보는 앞에서 새로운 강자에게 두들겨 맞은 늙은 깡패두목이 맞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코에는 코피가 질질 흐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좌절감은 윤광웅 국방장관을 입을 통해 확인할수 있었다. 윤 장관은 10월9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 한국이 워치콘 상향조정을 요청했으나 미국은 북한의 이상징후가 없어 올릴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워치콘 2단계가 발령되면 비상태세로 돌입하게 되어 한반도에는 위기감이 고조된다. 미국은 그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윤 장관의 요구를 거절했다. 전쟁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워치콘 2단계로 상향조정을 요구한 한국정부를 바라보자면 참으로 무지하다는 생각을 떨칠수 없다.) 러시아 이바노프 부총리는 10일 모스크바에서 외국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전세계가 일치해서 한목소리로 북한이 사실상 핵클럽에 가입했다는 점을 부인하려 한다면서 핵폭발의 강도와 성격에 대해 각국 전문가들의 평가가 다른 데에는 정치적, 기술적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미국의 의도적인 부정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에게 통하지 않았다. 미국이 실패설을 내돌리지 북은 즉각 추가 핵실험을 실시할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추가핵실험을 실시했다. 2006년 10월11일 8시, 일본 공영방송인 <NHK>와 <니혼 텔레비전>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의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11일 7시40분경에 2차(추가)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전하면서 일본 정부가 북한의 2차 핵실험 정보를 입수하고 확인중에 있다고 보도했다. 2006년 10월11일 08시20분, 라이스 장관은 이날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외교적인 길이 열려 있음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며 북한이 방향을 바꿔 6자 회담에 복귀하고자 한다면 문호는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도발적으로 북한을 침공하려 한다는 건 정말 사실이 아니다며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거듭 말했다. 2006년 10월11일 11시, 베이징(北京) 주재 북한 관리는 연합뉴스와의 접촉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추가적인 핵실험은 정치 외교적 판단에 따라 이뤄질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봐달라고 말했다. 2006년 10월11일 17시, 추가핵실험 후 10시간만에 미국 정보당국관리는 북한이 실시했다고 선언한 실험대상이 핵폭탄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AFP>에 익명을 전제로 폭발력이 약하다는 점을 이유로 핵실험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가설의 하나라면서 미국측은 지진계 기록상 북한이 분명히 핵폭탄을 실험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2006년 10월11일, 한나라당 정형근 최고위원은 북한 핵실험은 완전히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주장했다. 정형근 의원이 미국의 스파이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 정치적 행동이다. 핵실험 실패설이 성공설로 순식간에 돌아서는 미국의 모습 중에 정형근 의원이 있었다. 정형근의원은 이어서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 미국의 저명한 핵물리학자인 헤커 박사가 허둥지둥 추가(10월11일) 핵실험 사실을 은폐하려 북과 접촉하기 시작한 것이다. 추가핵실험 사실 공개여부는 북한이 결정하는 것이다. 부시는 관련국의 입을 막고 라이스 장관은 총알같이 <CNN>으로 달려가 외적적 해결책이 있음을 강조했다. 미국은 한국이 워낙 빨리 발표를 하는지라 제일 먼저 전화 다이얼을 돌렸고, 그 다음 중국, 그 다음 러시아, 그 다음 일본으로 전화를 넣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그만 일본이 방송하고 말았다. <NHK>와 <니혼 텔레비전>의 추가핵실험 긴급방송은 오보가 아니었다. 미국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로 전화를 걸어 협상을 할 터이니 사태를 키우지 말아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다. 북은 추가핵실험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다. <NHK>와 <니혼 텔레비전>의 긴급방송은 오보로 처리되었다. 2006년 10월10일, <로이터통신>은 북한 당국과 가까운 소식통의 발언을 인용, 9일 핵실험에 사용된 무기가 중성자탄이라고 보도하면서 북한이 중성자탄을 실험한 것이라면 장차 미군이나 한국군과 전쟁시 전술핵무기로 배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영국 왕립 <합동군사연구소(RUSI)>의 군사전문가 리 윌렛은 핵탄두는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재래식 미사일과 핵탄두를 서로 맞추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며 이런 점에서 북한의 핵실험 무기가 중성자탄이라는 가설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말했다. <제인연감> 편집자 던컨 레녹스는 북한이 핵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하려면 현재 기술적으로는 탄두 중량을 500~700㎏으로 줄여한다고 말했다. 중성자탄이 미사일에 탑재하기가 용이하는 뜻이다. 2006년 10월11일, 홍콩의 저명한 군사전문가 차우훙(昭鴻)은 <홍콩 명보(明報)>와 인터뷰에서 핵실험의 성공 여부를 폭발 규모로 가늠할 수 없다며 북한이 더 정밀한 핵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차우는 폭발규모로 핵실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관념이라며 북한의 핵기술은 크게 저평가 돼 있고 이미 제3세대 핵무기인 중성자탄을 개발중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중성자탄을 언급한 이유는 1998년 파키스탄에서 수폭실험을 목격했고, 2004년 9월8일 밤11시와 9월9일 새벽1시에 실시한 중성자탄 실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급정보는 이제 공공연한 사실로서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앞서 필자가 언급한대로 중성자탄은 고폭화약과 수소(중수소와 삼중수소)로 이루어져 있다. 플로토늄이나 농축우라늄은 필요 없다. 북은 핵시설이 단 한개도 없어도 핵무기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진도가 얼마고 진원지가 어디고 이런 것들은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이번 공식적인 핵실험은 북의 핵능력을 기술적으로 검토하는 단계가 이미 지난 시점으로서의 핵실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중성자탄이라는 것이고 핵클럽의 문턱을 넘는 정치적 행위이며 미국에 대한 보복능력을 입증하는 군사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2006년 12월 10일 / 황선종

* 이 글은 친북 반미 싸이트 서프라이즈에서 따온 글로서 북한의 강성정책, 선군정책 옹호를 통해 북한의 핵능력을 과시하여 남한국민들을 북한의 무력에 굴복시키려고 만든 자료를 옮긴 것으로 늙은 공작원 이영희의 평생 주장인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강하다"라는 논리와 대치되는 글임. 젊은 주사파와 고희의 주사파간 북한 중심 민족통일의 방법상 차이를 나타내는 글로 김일성 사후 심화조 사건을 통해 4만여명의 김일성 직계조직을 김정일이 숙청한 것 같이 남한 내 노희 공작원중 김대중 계열에 붙지 않은 사람들이 공중에 뜨는 등 그들 사이에 내분이 심화되고 있음을 나타내지만 좌파의 대한민국 김정일에게 갖다바치기의 배경을 근본적으로 깨닫게 하고 우리의 시급한 핵 개발을 촉구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만들고 북한, 시리아, 이란 등에 핵 기술을 전파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가 “북한이 핵 무기를 완성하고 장거리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2013년 5월 11일 이상의 내용을 다시 확인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