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생성 및 이동(한단고기와 비교)


원인(猿人)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와 함께, 호모 하빌리스가 이에 속한다. 원인에 속하는 화석표본에는 여러 가지 다른 점이 있지만, 모두 직립자세(두 발로 걸었다)를 취하고 있었다는 것이 골반의 형태나 두개저(頭蓋底)에 있는 대후두공(大後頭孔)의 위치로부터 증명되었다. 따라서 팔은 보행으로부터 해방되어 도구를 사용하기에 충분히 자유로웠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또 송곳니는 단축되어 엄니모양을 하고 있지 않다. 이런 것들은 인류적 특징이다. 뇌의 용량은 500∼700ml

원인(原人)

아프리카에서 벗어나(한단고기에는 이런 말이 없고 문명 인류의 경우 시베리아가 시원이라고 한다) 아시아, 유럽 등으로 삶의 영역이 넓어졌다. 자바원인, 북경원인, 하이델베르크인 등이 이에 속하며, 공식 학명은 호모 에렉투스다. 불의 사용으로(환인께서 불의 사용법을 가르치셨다고 한다) 원인은 추운 겨울철이 있는 온대지방까지 분포하게 되었다고 추정된다. 원인은 시대적으로는 신생대 제4기 홍적세 전기∼중기(6500만년-250만년)에 걸쳐 살았다. 두개골 용량은 850∼1200ml로서 평균 1100ml이며, 현생인류의 2/3∼3/4이다.

구인(舊人)

네안데르탈인 및 이것과 유사한 화석인류들의 총칭이다. 빙하지역까지 삶의 범위를 넓혔다. 뇌의 부피는 1450 전후이고 현생인류(신인)와 비슷하며 그보다 약간 큰 것도 있다. 신인에게서 볼 수 있는 송곳니와 아래턱은 거의 없다. 딱 벌어진 체격에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은 150㎝ 정도이다.(나중에 나온 학설에 의하면 2m 가까이 되었다고도 한다) 구인은 페름빙기의 제1기, 연대적으로는 약 10만∼3만 5000년 전에 존재하였다. 1859년 독일의 네안데르탈에서 발견된 이후 많은 유골이 유럽 및 아프리카·중근동·중국·자바 등 구세계 각지에서 발굴되었다. 유럽·서아시아 각지에서 매장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구인은 피안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아시아인의 내세 사상으로 서구의 영생의 개념도 여기서 유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인(新人)

소위 백인들이 주장하는 신인은 3만 년 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이며, 그리말디인(grimaldiman), 크로마뇽인(cro―magnonman) 등 화석인류와 현대인 등이 이에 속하는데, 학명은 현대인의 학명과 똑같이 homo sapienssapiens이라고 하나 한단고기에는 환국(桓國: 밝은 나라, 불의 나라)민족이라고 한다.

 

 

 

인류의 진화

백인들의 학문에서는 인간에게 있어서의 직립은 큰 의미를 가진다. 직립으로(곧게 서면서) 인간은 멀리까지 내다보게 되면서 위험 요소를 미리 알아내게 되어 나무로부터 내려와 생활공간을 확대시켜 갔다. 또한 척추가 뇌를 안정적으로 받쳐 주어 뇌의 발달이 촉진되었고, 점차로 앞발을 두 손으로 사용하게 되어 무언가를 쥐게 되면서 동물과 크게 구분 되는 도구의 사용 시대를 맞는다고 하나  2005년 내이멍구 지역(우리가 아는 고비사막)에서 1만4천년 전 흑피옥 조각상(다음 장 참조)이 수 백 여점 이상이 발견되고 이들 중 인간 모양의 조각상은 거의 전부가 남여 양성인 점으로 미루어 인간의 진화를 직립과 손의 사용, 두뇌의 크기 등을 기준으로 삼던 종래의 백인들의 인긴 진화 주장은 동방에서 나타나는 현대의 고고학과는 맞지 않는다. 백인들은 나아가 도구의 사용은 먼저 인간에게 대담성을 부여한다. 돌, 몽둥이가 연장이자 무기가 되어 몇 명씩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위험이 닥치면 협력하여 맹수에 대항하게 하기도 하고(정글 의 무법자화), 먹을 것을 찾아 보다 멀리까지 나아가게 함으로써 인류의 생활공간을 확대시켰다. 또한 도구의 사용으로 하루 종일 음식을 구하던 채집가에서 도구를 사용하는 사냥꾼으로 변화된 인간은(모든 인간이 아니고 백인들의 조상인 크로마뇽인이 그러한 듯 하다) 식량을 구하는 데 드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이는 인류에게 보다 많은 시간을 부여함으로써 인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한편, 불의 사용 역시 인류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 불은 처음에는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다 불의 속성을 깨달으면서 불씨를 주어다 이용하게 되고 끝내 인공적으로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게 된다. 불을 이용하면서부터는 맹수의 습격과, 추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고, 이제는 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추운 곳으로 진출하기도 하면서 인류의 영역을 보다 확대시켜 갈 수 있었다. 또한 불은 음식을 익혀 먹고, 구워  먹게 함으로써 식사량을 늘려 인류의 골격을 향상시키기도 하였고 밝기를 제공함으로써  밤 작업도 가능 하게 하였다. 이는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의 양을 대폭 늘림으로써 인류 문화 발달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도구의 사용, 불의 사용은 인간의 평균 수명을 점차 늘려 갔고 이는 가용시간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인류의 문화는 보다  발전할 수 있었다.

문명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out of Africa)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인 크로마뇽인만 문명인류라고 했다가 그들이 식인종임이 밝혀지자 네안데르탈인도 문명인류 범주에 넣고 있다. 현생 인류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하는 것은 단일 지역 즉,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설과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기원했다는 설로 나뉜다. 대부분의 백인 과학자들은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은 약 1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갑자기 출현했으며 그때부터 5만 년 전까지 그 전에 이미 정착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 등 모든 다른 인종들을 대체했다는 '이른바 아프리카 기원설' 또는 '단일지역기원설'을 주장한다. 이 설에 따라 인류의 가계도를 그리면 모양이 마치 노아의 방주 앞부분을 닮았다고 해서 아프리카 설은 일명 '노아의 방주 모델(noah's ark model)'로 불린다. 미국의 유전학자들은 서구의 주장을 받아드려 지난 1987년 DNA 연구를 통해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mtDNA)가 모계를 통해서만 전해진다는 사실로부터 출발, 현 인류의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현대인의 근원지는 아프리카 대륙이었으며 어느 한 여성(미토콘드리아 이브)이 인류의 공통조상이 된다는 것. 또 하나의 증거는 인류의 오랜 화석이 아프리카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는 점이다.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계곡에서 발견된, 일명 「루시」라고 불리는 2백50만 년 전의「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나 탄자니아 올드바이 유적에서 발견된 여러 점의 인류화석이 그것이다.

다지역기원설(multiregional continuity model)

일부 과학자들은 약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온 것을 계기로 유럽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인류가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흔히 '촛대형 모델(candelabra model)'로 불린다. 끝이 여러 갈래로 나눠진 촛대처럼 아득한 옛날 인류는 한 뿌리에서 자라났지만, 현생 인류 이전에 여러 갈래로 나눠져 세계 곳곳에서 발달했다는 설명이다. 오늘날 각 지역의 현대인들은 각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진화해온 결과이기 때문에 현대 형 호모사피엔스는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진화하여 유전자 교환이나 유사진화를 거쳐 오늘의 호모사피엔스에 이르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네안데르탈인들의 일부가 빙하기에 살아남은 것 같다(근거: 황, 백인종의 털)

루시 Lucy

고인류학상 최고원인(最古猿人)의 한 개체의 속칭. 1974년 요한슨 등이 에티오피아의 하다드 사막에서 발견했다. 전골격의 반수 가까이가 수습되었으며, 신장 1m 가량의 20세 전후의 여성. 직립2족보행을 했으며, 뇌 용적은 작고(400), 약 350만년 전에 생존한 것으로 추정된다. 탄자니아의 레토리에서 출토된 표본과 아울러 아우스토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아파르의 남쪽 자리라는 뜻)라 명명되었다. 루시라는 이름은 발견된 날 밤 조사대의 캠프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비틀즈의 곡명에 유래한다.

서양 학자들이 주장하는 인류의 생성 및 이동

인류의 이동을 보여주는 지도.

지금까지(2012년)서구에서 주장하는 인류의 생성 및 이동은 그림과 같다.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직립보행인류는 그곳이 사막화 되자 식량을 찾아 걸어서 아프리카의 북부로 왔고 홍해를 건너 아세아, 오세아니아, 남북 아메리카로 갔으며  동남아시아로는 약 63,000년(저자 설명: 한단고기에서 밝힌 환인조선은 BC 7.197년 또는 BC 67.068년에 시베리아에서 건국했다고 한다) 전에 인류가 이주하여 왔다고 한다. 인류의 전 대륙 동시 기원설과 아프리카 기원설의 긴 논쟁에서 아프리카 기원설에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은 물론 그 지역에서의 인류 화석의 대량발굴에 기인한다. 유적의 발굴이 곧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는 사실은 그 가설이 무너지면 논리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는 이론이다. 서양 사람들은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서 발굴되는 여러 고고학 증거물을 준거로 하여 아프리카에서 살던 인류가 이동한 흔적을 추정하고 있다. 이는 물론 하나의 가설이다. 인류가 움직인 경로 하나하나에 그 이동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니므로. 이와 같이 아프리카가 현대 인류가 태어난 고향이라면 현생인류는 무엇 때문에, 어떻게, 어느 시기에 자기 요람을 떠나 다른 대륙으로 건너간 것일까? 아마도 그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문제였을 것으로 본다. 즉 식량의 문제, 아니면 더 포괄적으로 식량 위기를 가져온 기후의 문제, 나아가 생존의 절박한 이유가 그들을 아프리카 밖으로 밀어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단순한 그 시기에 인류가 집단적으로 먼 길을 떠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분명히 해둘 것은 아프리카에서 살던 현생인류가 어느 시기에 대 이동을 실행하였다고 해서 새로 정착한 지역, 예를 들어 유럽이나 아시아에 다른 류의 현생인류의 조상이 살고 있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이동의 경로를 잠간 동안 살핌으로써 이제 유인원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비롯한 여러 조상 인류의 그원을 알고 우리인간의 직접 조상들이 이루어 놓는 문명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시기적으로 말한다면 약 10만 년 전부터 4만 5천 년 전 사이에 결정적인 이동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서남아시아에서는 이 시기에 틀림없이 사람이 살고 있었고, 늦어도 5만 년 전에 새로운 석기기술이 발달한 흔적이 보이며, 유럽에서는 약 4만 년 전에 처음으로 미술이 출현하였고(쇼베 동굴 등 서부 프랑스 지역),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약 3만 5천 년 전에 인간이 거주한 증거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처음 인류에게 이동을 야기한 무엇인가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류 외부의 급격한 변화 뿐 아니라 인간 내부의 제 관계에서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단순한 기후의 변화 등으로 인간이 이동하였다는 것은 인류의 현생 인류로서의 진화과정에 무엇인가 생략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문제는 이 시기 인류가 이동할 수 있는 능력, 즉 사회적 관계의 형성과 오랜 기간 유대관계를 이루며 미지의 세계로 갈 수 있는(또는 가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납득시킬 수 있는 )의사소통, 소지할 수 있는 제반 석기기술의 발전 등을 수반하지 않으면 불가능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학자들은 이 시기를 급속한 문화진전이 이루어진 "문화 폭발"의 시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사하라가 초원이었던 시절 - 타실리 나제르 암벽화는 선사시대의 바위그림 군이나 다른 고고학적 경관으로도 알려져 있다(벽화 참조). 바위그림에는 소의 무리, 악어 등의 대형 생물, 수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 등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열대 아프리카와 지중해 지역 사이의 인구 이동에 제일 중요한 장애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땅인 사하라 사막이다. 그러나 10만 년 전에서 4만 년 전 사이에 북쪽의 혹독하게 추운 빙하기 조건이 이 사막에 차고 습윤한 기후를 가져왔다. 이 곳에서는 이 시기 광활한 초원을 이루고 사냥감인 동물들이 살기에 적합한 조건이 이루어져 인류는 이곳에서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사하라 지역을 가로질러 통과하면서 나일 강 유역과 서남아시아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서양 사람들은 주장한다. 사실 사하라 지역이 10만 년 전 사막화가 진행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하라가 갑작스럽게 기후가 건조해지고 기온이 상승하면서 사막화가 진행된 것은 초기 청동기 말엽인 기원전 2300년경의 일이다. 그전에는 사하라 지역에 수천 년 동안 가축을 키우고 농작물을 재배한 사람들의 집단이 살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들이 대 이동의 시기에 동아프리카 쪽에서 와서 사하라 지역에 잔류하고 있었던 집단의 후손일 수도 있다. 약 6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까지는 유럽에서 마지막 빙하기가 진행되어 특히 북부유럽으로의 진행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위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류는 빙하 지역을 피하여 먼저 서남아시아 쪽으로 진행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약 5만 년 전 이후 서남아시아가 점차 건조해지고 불모화가 진행됨에 따라, 그리고 유럽의 빙하기가 점차 완화됨에 따라(아직 북유럽은 빙하기 진행 중) 일부의 인류가 터키와 유럽동남부를 잇는 지역을 건너 이동함으로써 본격적인 유럽으로의 이동이 이루어졌다고 백인들은 주장한다. 나아가 동아프리카에서의 대 이동은 크기 두 가지의 경로로 이루어지는 바, 이는 동시적인 진행은 아니고 처음에는 사하라 쪽에서 우측으로 이동하여 서남아시아 쪽으로 이동하다가 일부는 더 나은 기후 조건을 따라 유럽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물론 서남아시아 쪽의 인류는 일부가 유럽이 아닌 오스트레일리아 쪽으로의 이동도 있었으며, 한참 후의 일이지만 아메리카로의 이동도 이루어지는 좀 더 복잡한 경로의 이동이 이루어져왔다고 한다.. 2010.4. 10 blog.naver.com/777kyb/10084259655

인류 게놈 이동도

이홍규 박사의 인류의 이동도에서 보면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이집트를 거쳐 동진 하던 인류가 주동에서도 유럽으로 갈라졌지만 c와 d지점에서도 멈추었다가 일부가 다시 서진 한 것을 볼 수 있다.

 

 

 

소결론 (서양의 학설 평가)

인류의 기원에 관한 학설은 아프리카기원설외에도 유럽 기원설, 다 지역 기원설, 창조설, 우주 생명체 설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모두 유럽인(백인)들의 주장이고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1. 서구인들의 주장인 빙하기에 네안데르탈인은 모두 멸종했고 아프리카 남쪽으로 도망한 사람들만 살아남아(루시 설)이들이 중동으로 나와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것은 현대에 와서 이루어진 여러 고고학 적 발굴 결과(1만7천 년 전 만주의 군량미, 1만 7천년 전 내 몽고의 흑피옥 조각상 등)로 미루어 믿을 수 없고 네안데르탈인이 빙하기에 살아남았으며 따라서 유라시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들의 흔적이 보인다.

2. 아프리카인이나 유럽인(크로마뇽인)은 문명 인류의 시조가 아니고 네안데르탈인이 문명 인류의 시조이며 백인들은 네안데르탈 인의 변종이다.

3.크로마뇽인(유럽 백인종)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분리되어 나간 변종으로 식인종이었다. 인류의 기원과 관련 가장 큰 명제는 크로마뇽인의 근본과 네안데르탈인과의 관계일 것 같다. 저자의 판단에는 동, 서방 학자(4 번째 지도 : 이홍규 박사, 2 번째 지도 : 스펜서 웰즈 박사)가 각각 작성한 두 편의 인류게놈 지도에 의해 아프리카(흑인의 조상)남쪽에서 아프리카 각지로 흩어졌거나 는 아시아 시베리아에서 발원한 남여 혼성 직립원인이 아시아,오세아니아, 남북미, 또는 유럽으로 갔다고 본다(황인종과 백인종의 조상) 특히 백인은 시베리아에서 유럽으로 갔다가 빙하기를 거치면서 현재 유럽인인 백인 즉 크로마뇽인이 되었다고 본다. 유럽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은 백인들의 주장대로 대부분 크로마뇽인들에 의해 사냥을 당하고 그들의 식용이 되었다.(백인들은 대부분 식인종으로 그래서 아시아인들에게 있는 고인돌이나, 분봉 같은 무덤이 없다. 그들이 조상의 살을 발라먹은 동굴 벽화가 발견된 이후 독일 크로마뇽 지역의 동굴은 모두 폐쇄되고 관람이 금지되었다. 

4. 백인의 특성

네안데르탈 크로마뇽인의 백인화 과정을 살펴보면 그들은 처음에는 아시아의 만주지방과 비슷한 추운 위도에서도 대서양과 지중해의 비교적 따뜻한 바람의 영향으로 풍족한 식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소위 밀란코비치 이론(1875~1958, 유고슬라비아)에 의해 4만년 동안 북극의 위치가 22.1~24.5도(현재는 23.5도)로 바뀜에 따라 폴렌드(Pole Land)가 북극이 되고 유럽이 어두워지자 햇빛이 들지 않거나 낮이 짧아지고 (핀랜드의 오로라 현상처럼), 식량이 부족해졌으며 그들의 피부와 머리색갈이 멜라닌 부족으로 희어지거나 노래지고 동공은 주변 환경의 색깔을 따라 파랗게 변했다.(지금 심해어 눈 색깔도 파랗다: 네셔널 지오그라피 방송 참조) 이들은 자연적으로 긴 밤에 익숙해졌고 먹을 것이 부족하여 살기 위해 동족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이 기원전까지 유럽인의 육식의 기원이 되었고 전쟁과 불안한 이동 생활로 인해 가족형성과 정상적인 부부생활의 어려움으로 아시아에 배해 여성의 정조관념이 희박해진 원인으로 보인다. 또 유럽에서의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동거설의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크로마뇽인의 기원은 네안데르탈인 중 유럽지역으로 퍼져 나간 변종들이고 그래서 백인들에게 불의활용, 농사, 정령 숭배 등 아시아인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역사 흔적을 육지에 비해 오래 간직하고 있는 섬나라인 영국에서는 지금도 그들의 토속 종교인 드루이드교(Druidism)의 의식에서 인육을 먹는다.

5.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유럽에는 환인조선의 흔적인 불의 활용, 농사, 시장을 통한 거래 등  3만5천년 전 환인조선(기원전 7만년 건국 설도 있다.)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국 민족의 조상들은 시베리아에서 마지막 빙하기(뷔름빙하기)의 혹한을 이기고 살아남은 네안데르탈 몽골인의 후손이며, 이들이 남하하여 만든 문명이 흑피옥 문명과 요하 문명이고 현대 문명 인류의 시원이다. 결국 현대에 와서 카터 코벨 박사에 의해 주장된 이 가설을 백인들과 유대인이 만든 국제기구인 유엔이 세계적으로 받아드렸고 한국이 인류의 시원국가임이 증명되었다. 즉 현 인류의 모든 DNA는 한국인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10만년주기빙하기(氷河期)이론설_

현재는 온난한 간빙기(間氷期)

과거 약 65만 년 사이에 대하여 말하면 약 65 만 년 전 무렵의 권츠 빙하기, 약 50만 년 전 무렵의 민델 빙하기, 약 40만 년 전에 시작되는 리스빙하기, 약 10만 년 전에 시작되는 뷔름빙하기의 4개의 빙하 와각각의빙하기사이에 3개의간빙기가있었다는것이일반적으로알려져있다. 뷔름 빙하기가 사라진 것은 지금부터 약 1 만 년 전이다. 따라서 현재는 뷔름 빙하기에 이어지는 제4의간빙기(온난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간빙기는귄츠민델간빙기(제1간빙기), 민델리스 간빙기(제2간빙기), 리스뷔름간빙기(제3간빙기)가 알려져 있고, 간빙기의 기온은 현재와 같거나 현재보다 따뜻한 편이며, 현재는 제4간빙기에 해당된다.밀란코비치 이론(1875~1958, 유고슬라비아)은①지구의 태양 공전 궤도가 10만 년 주기로 원에서 타원(이심률)으로 바뀌며,②지구 자전축이 4만 년 주기로 22.1~24.5도(현재는 23.5도) 사이에서 변하고, ③지구축의 방향 또한 2만6천년(25,800년) 주기로 바뀌는 세차운동이 지구 기후 변화의 주요인이라는 것이다.지구기후에절대적인영향을미치는북극이태양빛을얼마나보느냐마느냐가이런주기들에달려있기때문이다.

1976년에밀란코비치의생각을논증하는논문을미국의베이즈(1933~)등이 발표하였다. 그들이사용한데이터는대륙에서멀리떨어진인도양의수심약 3,000m에서채취한해저퇴적물이었다그들은해저퇴적물속에포함되어있는유공충의종류에주목하였다. 해수면가까이에살고있는유공충은바닷물의온도가약간달라지는것만으로그종류가바뀐다. 바닷물의온도가낮으면낮을수록저온에적응한유공충의비율이보다커진다. 이처럼하여얻어진데이터를바탕으로그들은가로축에연대, 세로축에저온에적응한유공충의비율을취한그래프를그리고, 그 그래프의 '주기분석'을하여어떠한주기의변화가두드러지는가를조사하였다. 그 결과 얻어진 것이 주기 약 2.3만년, 4.1만 년 및 10만 년의 변화였다. 이들은 각각 앞에서 서술한 자전축의 세차운동, 지구궤도의경사각및편평률의변화에대응한주기이다. 따라서 지금은 자연현상에 의해 온난화 과정 가능성이 높으며, 인간에 의해 좀 더 가속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온난화 과정 속에서도 가뭄, 홍수, 혹한이 함께 존재하고, 지진, 해일 등도 존재하게 된다. 이는 겨울에도 따듯한 낮이 있고, 여름에도 차가운 새벽이 있는 것과도 같다.

[출처]10만년 주기 빙하기(氷河期) 이론설_현재는 온난한 간빙기(間氷期)|